▲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노동법률)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산 국가가 됐다. 2015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바닥을 모르고 계속 추락해 지난해 기준 0.72를 기록했다.
그간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15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 280조 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저출산 문제로 인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다"며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그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할 것"이라고 했다.
최악의 상황을 마주한 대한민국, 과연 저출산 문제의 해법이 있을까? 노동법률이 9월 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서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현재 저출산 문제에 가장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경제학자로서 인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A. 원래 전공이 경제사였기도 하고, 지도 교수였던 시카고대 로버트 포겔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포겔 교수 지도하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인구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학문 연구가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와 맞닿아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야 더 유익하고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구 문제만큼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주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인구 변화는 인류 역사에서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저출산, 고령화로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그간의 학문적 경험과 사회, 경제적 변화가 맞물려 경제학자로서 저출산 문제에 많은 목소리를 내게 됐다.
Q. 시카고대 인구경제학센터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다. 최근 미국도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미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A. 미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66이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으로서는 4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해서 놀라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나라만큼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은 법정 육아휴직 제도도 없다. 미국과 유럽은 가족 정책을 우리나라만큼 적극적으로 제도화하지 않았다. 가족 정책 제도화보다는 재택근무 등 유연한 근무 환경을 늘리려는 노력에 집중했다.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 일시적인 휴가를 부여해 육아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근무 방식의 유연화를 통해 일을 하면서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Q. 미국에서도 저출산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출산율이 2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나.
A.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출산율이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민의 나라'여서다. 미국은 여전히 젊은 이민층이 많고, 그들의 출산율이 높다 보니 미래 노동인구 감소가 문제 되지 않아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미국은 가족의 가치가 매우 높은 나라다. 2021년 미국 큐 리서치 센터에서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는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가족이라고 답했고, 미국은 특히 이 비중이 높았다. 출산율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족의 가치가 높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보니 여전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려는 젊은층의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높다. 미국이 여전히 경제적 기회가 높은 국가인 점도 아직 미국 젊은층이 결혼과 출산의 욕구를 갖는 이유다. 젊은층이 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려면 미래에 자신들의 삶에 기회가 있다고 느껴야 한다. 미국은 아직 젊은층이 이런 기회가 존재한다고 느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유인이 존재한다.
Q. 유독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A.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다른 선진국과의 차이점은 우리나라만 급격한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라는 점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보통 100년에 걸쳐 매년 2% 정도씩 경제가 성장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매년 10%씩 성장해 선진국이 됐다. 우리나라의 빠른 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과도한 경쟁'이었다. 과도한 경쟁이 압축 성장을 가져왔지만 이제 심각한 저출산의 주범이 되고 있다. 과도한 경쟁이 사교육 문제, 수도권 쏠림 현상에 따른 집값 상승, 타인과 비교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이것이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의지를 꺾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다. 2015년에 출산율이 처음으로 1.0 밑으로 떨어진 뒤 10년간 반등 없이 내리 하락했다. 2015년 출산율 하락에는 '제2 벤처 열풍'이라는 배경이 있다. 제2 벤처 열풍으로 판교 등 수도권에 IT 회사들이 대거 들어섰다. IT 회사들이 수도권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다 보니 지방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대거 수도권으로 이동했다. 또한 2015년 처음으로 여성의 대학 진학률과 고용률이 남성을 넘어섰다. 20대 여성들의 교육 수준과 경제적 지위가 높아졌고, 자기 개발과 경력 개발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외면받은 것이 바로 경력 단절을 가져오는 결혼과 출산이다. 이 시기에 정부가 수도권 쏠림과 여성의 지위 향상에 발맞춘 일·가정 양립 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어야 했다. 이 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 보니 저출산 문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뒤 점점 심각해졌다.
Q. 지난 15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에 들어간 정부 예산은 280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출산율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고 청년들은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A. 매년 '저출산 예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예산이 50조 원 정도 된다. 저출산 예산이 커 보이는 이유는 예산 안에 청년층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는 대출 예산이 포함돼 있어서다. 저출산 예산 중 절반인 25조 원가량이 대출 지원 예산이다. 대부분 시중 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주택 구입비를 대출해 주는 용도다. 주택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금액이 높아 예산 규모가 커 보이고, 주택 가격 상승으로 덩달아 예산 규모도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대출 지원 예산은 청년들이 결국 나중에 원금을 상환해야 해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출 지원 예산을 제외한 나머지 25조 원이 실질적인 저출산 예산이다. 청년들에게 저출산 정책의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실질 예산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인구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가정 양립과 돌봄 문제 해결이다. 이 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예산이 늘어나야 청년들이 저출산 예산의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육아휴직 급여 상한 확대, 공적 돌봄 확대를 위한 예산은 과감하게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예산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저출산 예산은 유럽 국가들보다 15조 원가량 적다. 청년층이 정책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분야에 적극적인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
Q. 인구 문제의 핵심으로 돌봄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 정부와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어떻게 보나.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 이야기도 나오는데.
A.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도입해 볼 만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범 사업도 하기 전에 최저임금 구분 적용 이야기가 나온 것은 문제라고 본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문제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돌봄의 가치를 낮게 만들 수 있어서다. 돌봄의 사회적 가치가 낮아지면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돌봄 노동 시장에 내국인 근로자들은 참여하지 않게 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가 아니다. 출산율이 아무리 낮아졌다고 한들 신생아 수가 몇만 명에 불과한 홍콩, 싱가포르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몇십만 명의 신생아 돌봄을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다 해줄 수 없다. 이미 일본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로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노동법률)
Q. 현 정부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나.
A.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정부 각 부처에 업무 명령을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위원들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정책 수요자와 전문가를 만나 유익한 정책 제안을 쏟아냈지만 정부 각 부처에 업무 명령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보니 좋은 정책 제안이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다. 정부 부처에 정책 제안을 하면 예산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답변이 오고,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요구하면 이게 정말 효과적인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거부한다.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지난 총선에서 여당 공약총괄본부장으로서 인구부 설치를 총선 1호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앞서 지적한 위원회의 한계가 인구부 신설로 해결 가능할까.
A.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한계를 많이 느껴 여당 공약총괄본부장이 된 뒤 총선 1호 공약으로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을 내걸었다. 지금처럼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 없이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컸다. 저출산 문제는 노동, 복지, 교육 등 다양한 분야가 얽혀있어 권한 있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여러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저출산 해결을 위한 컨트롤 타워가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 몇 배는 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Q. 지난 총선에서 여당 공약총괄본부장으로 저출산 공약을 만들었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여러 가지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현 정부의 저출산 정책을 어떻게 보나.
A. 우선 여당 공약총괄본부장 시절 제안했던 인구부가 인구전략기획부라는 이름으로 신설돼 다행이라고 평가한다. 부 신설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명무실한 부가 되지 않도록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당의 총선 패배로 여당 공약총괄본부장 시절 제안했던 일·가정 양립 정책이 폐기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지난 6월 정부의 저출산 대책 발표에 잘 반영된 점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 확대, 육아휴직 신청 자동화, 육아휴직 시 동료수당 지급 등 일·가정 양립 정책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다만 가족 가치 증진,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투자가 적다는 점은 아쉽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비용을 완화하는 정책만으로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을 통해 청년층이 결혼과 육아를 긍정적으로 느끼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일·가정 양립제도가 잘 정착돼 있고, 남녀불평등 문제도 적지만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결국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해야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Q. 현재 추세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우리 경제와 노동시장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A. 저출산 고령화가 지금 추세로 계속되면 고령 인구 비율이 2045년에는 37%까지 높아진다. 이 추세면 고령인구 비율이 40%를 넘어 선진국 중 최고 수준에 도달하고 20년 뒤에는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확률이 높다. 이때가 되면 의료, 국방, 사회보장제도 등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이 모두 붕괴하는 현실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노동시장 수요가 유지되면 이론적으로는 근로자 처우가 개선되겠지만 어디까지나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할 때 해당되는 이야기다. 마이너스 성장이 시작되면 오히려 근로조건이 악화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출산율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의 출산율 반등은 우리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이 시작되는 20년 뒤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변화하지 못하면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기에 접어들 것이고, 그때는 정말 우리 사회의 존립을 걱정해야 한다.
Q. 저출산으로 가뜩이나 청년 노동력이 부족한데 '그냥 쉬는 청년'의 수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나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할까.
A. 쉬는 청년들에게 쉬는 이유를 물어보면 4분의 3은 구직 의사가 없다고 응답하고, 4분의 1은 본인에게 맞는 근로조건의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직 의사가 없다고 말하는 4분의 3도 결국 근로조건과 사회적 인식 때문에 구직을 단념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일하기 싫어서 일을 하지 않는 청년이 얼마나 되겠나.
현재 우리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근로조건 격차가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면 구직 자체를 단념해 버린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 비중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다른 선진국은 전체 일자리 중 대기업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각종 산업 규제로 인해 13.5%에 불과하다. 원하는 일자리의 수는 적은데 근로조건 격차는 크다 보니 노동시장 진입을 늦춰서라도 대기업에 가려고 노력한다. 사회적으로도 대기업이 아니면 실패라고 낙인찍는 문화가 있어 사회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아예 구직을 단념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격차를 줄이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Q. 노동계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4일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4일제가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A. 저출산 문제 해결은 근로조건 개선에만 있지 않아 주4일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4일제 도입이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확률도 높다. 북유럽처럼 근로조건은 개선돼도 출산율은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임금 삭감이 수반된 주4일제라면 이야기가 더 달라진다. 안 그래도 높은 집값 등 경제적 문제가 결혼과 출산의 걸림돌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임금 삭감을 수반한 주4일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임금 삭감 없이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를 늘리는 것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Q.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이주노동자 도입 확대로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주노동자 확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이주노동자 확대는 다가올 미래다. 하지만 그 전에 국내 유휴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스웨덴처럼 경력 단절 여성과 고령자 인력 활용을 확대하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10% 늘어나고, 남성까지 확대하면 총 18% 상승한다. 이주노동자는 언어의 문제, 문화 적응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경력 단절 여성, 고령자를 활용하는 방법을 먼저 찾을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 확대는 국내노동자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어서다. 유럽이 지금 이주노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이 국내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내국인 돌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낮추는 것처럼 이주노동자 확대가 산업 전반의 국내노동자 근로조건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국내노동자 반발이 없는 국내 유휴인력 활용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물론 내국인 유휴인력 활용을 확대해도 생산가능인구의 급감으로 이주노동자 도입 확대는 필요하다. 다만 지금의 비자정책을 확대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비자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자정책이 아닌 이민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이 단순히 일만 하고 돌아가는 비자정책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진국들의 저출산이 심화되면서 이주노동자 유치 경쟁이 발생할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자정책이 아닌 이민정책을 도입해 다문화 노동시장을 준비해야 한다.
Q. 인구 고령화와 관련해 노동계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A. 형식적인 정년 연장은 의미가 없다. 지금도 법적 정년은 60세이지만 소수의 공공기관, 대기업 근로자를 제외하면 정년 60세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형식적으로 정년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계속 고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임금을 낮추더라도 기업이 근로자를 재고용하도록 유인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일본은 형식적인 정년에 집중하지 않고 계속 고용에 집중해 현재는 65세까지 일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90%를 넘겼다. 법적 정년 연장 자체는 큰 의미가 없고 실효성도 없다.
Q.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재정에도 빨간 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해법이 있을까?
A. 근본적인 해결책은 보험료율을 높여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둘 다 어렵다. 일각에서는 정부교부금을 늘려 재정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지만 정부교부금의 본질은 세금이다 보니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같다.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보험료율 인상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출 효율화가 필요하다. 사회보험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보험료율을 높이겠다고 하면 받아들일 국민이 몇이나 있겠나. 충분한 지출 효율화가 전제돼야 보험료율을 높이겠다고 청년층을 설득할 수 있다.
Q. 앞으로 학자로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A. 인구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연금 갈등, 의정 갈등의 밑바탕이다. 인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런 갈등이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 사회, 노동 전반에 걸쳐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로 이득을 보고 있는 기득권들은 계속해서 개혁에 반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씩 양보를 하게 하려면 근거가 필요하고, 이 근거를 만드는 것이 학자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자로서 앞으로 좋은 근거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