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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4-11-07 08:58:00
수정 : 2024-11-07 15:10:16

노동 변호사에서 대법관까지, 김선수에게 듣는 ‘노동’의 본질

2024-11-07 08:58:00

[인터뷰] 김선수 전 대법관

[2024년 11월호 vol.0]

▲김선수 전 대법관(노동법률)

"판·검사 경력이 없는 노동 변호사 출신의 '첫 순수 재야 출신 대법관' "

김선수 전 대법관에게 늘 따라붙는 타이틀이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 6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 8월 1일 퇴임했다.

김 전 대법관은 지난 2018년 대법관 임기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노동법률과의 인터뷰에서 "노동법에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배려가 담겨 있다"며 노동법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치 않았을까. 노동법률은 지난 10월 17일 경기도 일산시 사법연수원에서 김 전 대법관을 다시 만났다.

노동 변호사와 대법관을 거쳐 현재 사법연수원 석좌 교수로 새로운 시작을 앞둔 김 전 대법관에게 그간의 이야기,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퇴임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퇴임 후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소감을 듣고 싶다.

A. 퇴임 후 한 달간 푹 쉬었다. 9월부터는 사법연수원에서 석좌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사법연수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력별 법관 연수, 신임 법관 연수 프로그램에서 특강을 하거나 국제회의에서 좌장을 맡는 등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이나 노동 판결에 관심 있는 기관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아 강연도 할 예정이다.

퇴임하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사건 처리의 중압감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안도감이었다. 임기 내내 구체적인 법리를 구성하고 판결 이유를 작성하느라 잠을 못 자는 나날을 보냈다. 동료 대법관들을 설득하고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고, 절차나 사무적인 실수를 하지 않을까 매 순간 노심초사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소수의견에 머물렀던 몇몇 사건, 꼭 선고하고자 했으나 선고하지 못했던 사건, 다른 대법관들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내 의견과 달리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 등등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나간다. 특히 임명 당시 순수 재야 출신 최초 대법관이라는 점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않았나. 적어도 각 부에 나와 같은 대법관이 1명씩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퇴임 후 순수 재야 출신 대법관의 맥이 끊긴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게 남는다.

Q. 순수 재야 출신 대법관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이 사법부에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A. 법관으로만 일한 경우 기록을 통해 현실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칠레에서는 일정 인원을 변호사 출신 대법관으로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칠레 대법원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 변호사 출신 대법관들을 어떻게 평가하냐고 물어 봤더니 법원에 다양한 시각을 가져다준다고 긍정적으로 보더라. 일본에선 소부 재판관에게 변호사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교사, 공무원 출신 등 변호사가 아닌 다양한 경력의 재판관이 있는 거다. 대법원 구성 다양화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각도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어 사법부에 많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본다.

Q. 과거 노동 변호사 시절에 본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노동법에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배려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법관 임기를 마친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A. 노동법에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배려가 담겨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노동법은 근대 시민법이 말하는 인간상과는 다른 인간상을 전제로 한다. 근대 시민법은 이성과 자유의지에 따라 체결된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사적자치 원칙을 기본적인 명제로 한다.

반면 노동법은 인간을 자본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종속적인 지위에서 노동을 제공해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러한 노동자를 사용하는 우월한 지위의 '사용자'로 구분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상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노동 사건에서는 당사자들이 늘상 체험하는 구체적인 차별과 그로 인한 절망, 분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해야 한다. 노동법 전문가라면 이러한 전제 위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존중하는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Q. 변호사로 첫발을 딛던 당시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변호사로 선택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았을 텐데 왜 '노동'이었나.

A. 부모님이 빈농이자 노동자셨다. 그래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대학교 1학년 때 읽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를 통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개인적인 출세만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개인적인 출세만 바라보는 것은 사회구조는 그대로 둔 채 혼자만 계층상승을 한다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불행한 상태에 있다면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온전하게 행복한 삶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노동 변호사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치열하게 살아가는 대학생 중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노동 현장에 취업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정도의 용기는 없었고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변호사로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했다. 사법고시 합격 후 노동 변호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노동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고시를 선택했다.

Q. 노동 변호사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노동 사건은 무엇인가.

A. 서울대 병원 근로자 1000여 명이 9개 사건으로 나눠 제기한 임금 청구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민사지방법원에 1989년 9월 1일자로 2개의 노동전담부가 만들어졌고,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를 처음으로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시그네틱스 해고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회사가 2002년 초 조합원 31명을 징계해고했지만 24명이 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했다. 복직 후에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임금 청구 사건의 변호사로 사건을 대리했다. 2016년까지 법적 분쟁이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관에 임명된 후 그때 투쟁했던 조합원들을 대법원 사무실로 초청해 차 한잔 대접하고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오랜 기간 투쟁하면서 연대와 동지애로 견뎌 낸 그분들에 대한 존경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어서 기뻤다.

Q. 노동 변호사로 지낸 약 30년 동안 쌓은 특기와 노하우가 있나. 이 특기와 노하우가 대법관 시절에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도 궁금하다.

A. 변호사로 활동할 때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의뢰인의 사정과 억울함을 토대로 관련 법리를 정성껏 글로 표현해 재판부를 설득해야 했다. 노동 변호사로 쌓은 '설득의 기술'이 대법관 시절에도 똑같이 쓰였다. 대법원 재판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대법관을 설득해야 했다.

법리적 근거를 보다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른 대법관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부족하다. 그래서 당해 판결의 의의와 그에 대한 사회·역사적 평가, 그리고 대법원의 역할과 책임에 부합하는 결론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설득했다. 모든 대법관이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기에 당해 사건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견해를 취해 약속을 지킬 것을 호소했다.

▲김선수 전 대법관(노동법률)

Q. 대법관으로 지낸 6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또, 변호사 시절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A. 대법관실은 마치 기록의 성벽에 둘러싸인 수도원과도 같았다. 퇴근하면 속세로 나왔지만, 법원 외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법원 외부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꺼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외부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또한 법관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대법관에 취임하다 보니 살인적인 재판 업무를 감당할 실무 역량이 있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이후 법관 경력이 없는 유능한 인재들을 대법관에 임명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사법 시험 공부를 할 때와 같은 집중력과 단순한 생활로 매 순간 온 힘을 기울였다.

Q. 대법관이 된 후에도 변함없이 노동 사건에 관심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대법관 재임 시절 생각보다 굵직한 노동 사건 판결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노동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 판결도 궁금하다.

A.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사건에서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한 판결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일본과 달리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대법원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 개정이라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유효하다고 판단해 문언 해석에 반하는 측면이 있었다. 헌법이나 근로기준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의 법정, 노사대등결정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에 의해 근로조건을 정하는 현행 취업규칙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근로조건의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위 판결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아쉬움이 남는 판결로는 국도관리원 차별 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다. 이 판결에서 소수의견이 돼 아쉽다. 원고인 국도관리원들은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공무원들과 같은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했다. 그럼에도 국도관리원들에게는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았는데 이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본다.
근로자에게 직장은 단순한 돈벌이의 장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자아를 성취하는 장이다. 긍지와 보람을 느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구성원에서 배제됐다는 소외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까지 잃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내 의견은 소수의견이 됐지만, 노동 사건을 담당하는 하급심 판사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울분을 담은 보충 의견을 강한 톤으로 남긴 기억이 있다.

Q. 대법관이 되면 "노동 사건 판례들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해 보려 한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대법관으로 재임하며 이런 시간을 잘 보냈나.

A. 대법관으로 재임하면서 선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노동 사건은 주심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도록 주의 깊게 신경을 썼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 동료 대법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인 경우도 있었다. 산재 사망 또는 직업병 인정 관련 증명 책임 전환이 쟁점이 된 사건에서는 판례 변경에 실패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연구관 보고까지 이루어졌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판결을 선고하지 못하고 퇴임해 아쉬운 사건들도 있었다

Q. 아직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굵직한 노동 사건이 많다. 재직자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여부를 다투는 세아베스틸 사건, 원청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할 의무가 있는지 다투는 현대중공업 사건이 대표적이다.

A. 두 사건 모두 대법관 재임 시절 주심을 맡지는 않았지만 임기 중에 선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노력했던 사건이다. 다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선고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치게 돼 너무 아쉽다. 현 대법관들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 보호라는 대법원의 가장 핵심적인 책무에 부합하는 판결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Q. 최근 노동 현안 중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있다면.

A. 윤석열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노동법원 도입이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21대 국회에서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있다. 여야가 조속히 협의해 22대 국회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됐으면 한다. 가장 대표적인 노동 약자인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도 필요하다. 진정한 노동약자 보호의 출발점은 근로기준법에서 5인 미만 적용 제외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다. 특히 해고 제한을 제외하고 있는 것은 빨리 폐지됐으면 좋겠다. 노동 사건의 특성을 고려한 노동법원 설립도 필요한 과제다.
노조 활동이 기업별이 아닌 산업별로 전환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미조직 노동자들과 폭 넓게 연대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도 단체협약 적용률을 크게 끌어올릴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단체협약 적용률이 전체 노동자의 30% 이상은 됐으면 한다.

Q. 대법관 퇴임사를 통해 준참심형, 참심형 노동법원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변호사와 대법관을 모두 거친 노동 전문가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법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노동법원이 생기면 노동위원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

A. 2003년부터 참심형 노동법원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유럽에서는 이미 노동법원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위원회는 집단적 노사관계 사건뿐 아니라 부당해고 같은 개별적 분쟁 사건도 담당하고 있는데,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개별적 분쟁 사건을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법의 본질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법원 고유의 업무영역이다. 그래서 노동위원회보다 노동법원이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만 노동 사건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반영하기 위해 노사단체가 추천하거나 선출한 사람을 참심원으로 참여시키는 참심형 노동법원이 필요하다. 참심원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완전참심제가 부담된다면 현재 노동위원회 제도와 같이 노사 참심원이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의 준참심형 노동법원도 첫 단계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노동법원 도입 시 노동위원회와의 관계 설정도 논의돼야 한다. 노동위원회의 역량과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 노동 사건에 대해 조정전치제도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노동법원을 도입한 유럽의 국가들도 조정전치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당해 심판담당부의 조정을 먼저 거치고 있고, 프랑스는 노동법원 안에 심판부와 조정부를 따로 설치해 조정부의 조정을 먼저 거치도록 하고 있으며, 영국도 노동법원 외부에 별도의 조정기구(Advisory, Conciliation and Arbitration Service)를 두고 그 기관의 조정을 먼저 거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위원회를 영국의 ACAS와 같은 조정기구로 활용한다면 노동위원회의 역량과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정전치가 재판 지연의 빌미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위원회 조정기간은 원칙적으로 2개월(1개월에 한해 1회 연장)로 한정하고 그사이에 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노동법원으로 이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제1심 지방노동법원은 소장 접수 후 6개월, 노동위원회로부터 이관받은 후 3개월 안에 판결을 선고하되, 1회 또는 2회 3개월 연장할 수 있도록 하면 신속한 분쟁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Q. 퇴임사에서 대안적 분쟁해결절차(ADR) 활성화도 당부했다. ADR이 노동 사건에서 더 활성화되려면 어떤 법과 제도가 필요할까.

A. ADR 확대를 위해서는 노사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중재인 풀이 형성돼야 한다. 노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중재 조항을 두는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다. 중재인을 개인이 아닌 노동위원회 같은 기관으로 선정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노동위원회법이나 규정으로 노동위원회가 중재인이 되는 경우에 대한 처리절차 등을 규정한다면 단순한 조정보다 훨씬 효율적인 해결 절차가 될 수 있다.

Q.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원하청 이중구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등으로 인해 양극화가 문제되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어떤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나.

A. 원하청 이중구조는 근본적으로 '간접고용'의 문제다. 간접고용은 사용사업주가 노동자 사용으로 인한 이익은 온전히 취하면서 그로 인한 책임은 전혀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기본적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하청노동자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사업주를 노동법상의 사용자로 인정해 노동자 사용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하청의 임금 격차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직무급제의 도입과 관련해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고 개별 사안에서 구체적인 법리와 적용 기준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Q.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입법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른 판결로도 문제 해결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란봉투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동조합법 제2조 사용자 정의를 개정해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갖는 사업주를 사용자로 보고 단체교섭 상대방으로 인정해야 한다. 법률로 입법이 돼야 법관들이 실질적 지배력설 입장에서 판단하기 수월하다. 손배가압류 문제도 해결이 필요하다. 지금의 과도한 손배가압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파업 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과도한 손배가압류 문제가 계속되면 정당한 노동3권 행사가 어렵다.

Q. 노동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A.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서 하면 본인이 생각했던 것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사건과 사람에 진정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진정성이 배신당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하지만 배신당했다고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꿈에 다다르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Q.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새출발을 하게 됐다. 앞으로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노동 전문가로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인간 김선수로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A. 앞으로 2년 정도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서 법관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 그리고 노동 판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퇴임사에서 국회에 요청한 사법개혁 입법을 포함해 법원이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신뢰받는 법원이 될 수 있도록 관련 법안 입법에 힘을 보태고 싶다. 노동 관련 법안들의 입법과 바람직한 노동 판결 선고를 위해 필요한 역할도 모색해 볼 계획이다. 죽는 그날까지도 더 나은 노동 법안 입법을 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며 눈을 감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 김선수의 마지막까지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