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전경(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산업단지는 청년을 원하지만 청년은 산업단지를 기피한다.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청년은 구직난을 겪는다. 산업단지를 둘러싼 '일자리 미스매치'는 이미 우리 사회에 낯선 주제가 아니다.
 
산업단지는 국내 제조업의 근간으로서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산업단지의 생산액, 수출액, 고용인원은 각각 전체 제조업의 67%, 67.3%, 48.6%를 차지할 만큼 산업단지는 국가ㆍ지역경제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과 위상이 청년들의 산업단지 유입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청년이 산업단지를 기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을 비롯한 정부기관, 전문가 등은 그간의 연구 및 분석을 통해 청년이 산업단지를 기피하는 이유로 낮은 급여 수준, 생산직ㆍ기술직 일자리 기피, 일자리 불안정성, 열악한 근로환경 등을 꼽았다. 즉, 산업단지 일자리가 청년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청년이 산업단지를 기피하는 문제는 산업단지를 품고 있는 지역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지방 소멸'이 남 일이 아닌 지역들은 타지역(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단기적인 정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가운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계층별위원회인 청년위원회(청년위)는 경기도 시흥시를 주목하고, 지난 11일 경기도 시흥시 청년스테이션에서 '준비됐나요?! : 청년과 산업단지, 일터의 뉴노멀' 지역간담회를 개최했다. 당사자인 청년에게 왜 산업단지에서 일하고 싶지 않은지, 청년이 일하고 싶은 산업단지는 어떤 곳인지 들어보기 위해서다. 이날 지역간담회에는 시흥시 청년 30여 명이 참석했다.
 
시흥시는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 단계에 조성된 시화공단, 반월공단뿐만 아니라 첨단ㆍ벤처업종 등 지식기반산업 중심의 시화MTV를 조성 중에 있다. 즉, 신구(新舊) 산단이 모두 존재하는 지역으로, 정부의 고조구도화 사업 대상이면서 스마트 그린산단 실행 계획에 선정된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시화공단의 경우 1만2000여 개 기업, 12만6000여 명의 근로자가 입주해 있는 전국 최대 중소기업 집적 국가산업단지다. 취업자 비중 등 지역 생산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이 높다. 인력난, 기술 및 자금 문제 등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산업단지가 그 역할과 위상을 지속할 수 있으려면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청년 친화적 산업단지' 조성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청년위가 선택한 지역은 시흥이었다. 청년위는 11일 열린 지역간담회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산업단지는 정말 준비돼 있는가?"
 
"준비됐나요?"에 청년이 답하다
 
11일 지역간담회를 앞두고 청년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황호연 시흥청년활동연합 대표(청년위 위원)은 시화공단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일을 하고 있는 시흥 청년들 7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황 대표가 진행한 인터뷰에선 확실히 청년 친화적 산업단지 모습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교통] 대중교통이 불편했다. 버스도 한 대밖에 없고 꽉꽉 차는데 20~30분에 한 대라 지각도 빈번했다. 셔틀 같은 것도 생산직 위주로 타는 거라 불편했다. 차가 없으면 일하기 힘들었다.
 
[휴식 공간] 휴식공간이 되게 열악하다. 가벽 세워서 휴식공간이라고 만들어놨는데, 그냥 바람막이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다른 업체는 보일러실을 휴식공간이라고 설정해두는 곳도 있어서 되게 놀란 적이 있다.
 
[조직 운영] 주먹구구식 운영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했다. 조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고, 공단 지역들은 개인사업자들도 많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노무ㆍ인사 쪽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회사가 없는 것 같았고 근로기준법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다. 저 같은 경우에도 포괄임금제로 계약을 하였고 그러한 상태에서 야근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진 않지만, 계약상 약속된 야근 시간을 넘어도 야근비가 잘 안 나온다거나 '바쁠 때 이렇게 해줄 수 있지'라고 융통성 있게 넘어가 주기를 원하셨다.
 
열악한 교통ㆍ휴식 공간, 주먹구구식 조직운영도 문제였지만, 낮은 질의 식사와 복지 부재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해당 인터뷰에서 산업단지에 대한 인식도 함께 물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공단은 안 갈 것 같다", "음침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음침하다", "노후한 환경, 환경오염의 원인, 올드한 분위기" 등 부정적인 답변이 주를 이뤘다.
 
마지막으로 산업단지에서 일했던 경험이 본인에게 좋은 경력이 되거나 업무 경험을 쌓기에 좋았는가도 물었는데, 이 역시 부정적인 답변이 더 많았다.
 
"딱히 좋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처음 신입들이 오면 제대로 된 신입 교육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적응이 힘들다. 물어보면 찾아보라고, 찾아봐도 모르겠으면 더 찾아보라고 한다. 업무 매뉴얼이 제대로 없다. 그냥 혼나면서 배우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아쉽게도 배운 게 없다. 스스로 터득한 게 많은데 방치를 당했다. (…) 그리고 일을 잘 안 주기도 해서 사실상 물경력이 됐다. 실질적인 업무 경험을 쌓기는 어려웠고 원래 신입들 OJT가 있는데 일이 바쁘다고 나를 제외시켰다. (…) 6개월 동안은 일을 한 기억이 없다. 주변에서는 일을 안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는 지난 11일 경기도 시흥시 청년스테이션에서 '준비됐나요?! : 청년과 산업단지, 일터의 뉴노멀' 지역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경제사회노동위원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산업단지는 '경제성장'을 위한 곳으로만 여겨져 왔었다. 애초 설계 단계부터 사람 중심의 산업단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물류중심에서 사람중심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관련 정부 정책이 만들어진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현재 정부는 산업단지 구조고도화사업을 통해 휴폐업공장 리모델링, 복합문화센터 설립, 아름다운거리, 고용환경개선 정부합동공모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시흥시의 경우 산업단지 구조고도화사업뿐만 아니라 현대 기반 시설 개량을 위한 산업단지 재생사업, 스마트 산업단지로의 변화를 위한 산단대개조사업,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경기도 그린뉴딜사업 등을 추진해 산업단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황 대표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전히 산업단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이는 비단 시흥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와 관련해 시흥시 관계자들은 저마다 청년 친화적 산업단지를 위한 개선과제를 내놓았다.
 
박희정 시흥시 노동자지원센터장은 청년 노동의 입장에서 시흥 산단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시흥 산업단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당 지역의 종합적인 개발을 충분히 고려하여 조성된 단지가 아니"라면서 "청년들이 구직을 원하는 산업단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개별 입주업체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청년 구직 친화적인 산단이 되기 위해서는 ▲산단 내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 ▲산업단지 환경 개선 ▲교육훈련과 고용서비스 제공 등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은주 시흥시정책기획단 위원(청소년청년분과장)은 산업단지 청년노동자를 위한 시흥시 노동정책과 향후 과제로 ▲시흥청년해피기업 패키지 사업 확대 ▲청년에게 괜찮은 일자리 지표, 청년친화산단 인증 및 모니터링 ▲노동인권 교육 강화(노동자, 사업주 대상 확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지역산업 맞춤 교육, 재교육 지원 등을 제언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시흥시 지역간담회는 산단 근로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청년이 일하기 좋은 산업단지를 말하고 만드는 가장 생산적인 대화의 장이었다"며 "산업단지개선을 위한 청년들의 제안이 시흥시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함은 물론, 중앙정부에서 현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일터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사노위 청년위원회는 그동안 대변되지 못했던 청년 문제를 청년 당사자가 발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별 간담회를 공론장 형식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시흥 지역간담회 이전에는 2월 광주, 6월 창원(부ㆍ울ㆍ경), 9월 대구에서 지역공론장을 열었다.
 
신수정 경사노위 전문위원은 "공론장은 당사자인 청년이 직접 참여해 토론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장이기 때문에 이번 시흥 공론장에서도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청년들의 생생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한 지역공론장을 다시 구상 중에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11일 지역간담회 '함께 토론하기' 시간에 시흥 청년 30여 명이 5개조로 나뉘어 청년이 일하고 싶은 산업단지를 위해 필요한 것(대안 찾기)이 무엇인지 토론한 내용들 중 일부.
 
- 정철민 : 산업단지에 제조 공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일하기 원하는 뷰티, 제빵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장이 함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 이상현 : 산업단지에 기업이 입주한다는 것은 혜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이 노동자 중심보다는 기업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기업이 정부로부터 지원ㆍ혜택을 받는 반대급부로써 전문가 컨설팅을 통한 임금체계 분석, 감독 관리를 받도록 조치하고, 기업의 혜택이 노동자에 대한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 장준영 : 산업단지에서 오래 재직한 사람들의 변화 필요하다. 신입이 들어오면 제대로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 필요성을 못 느껴서 일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신입들이 일을 잘 못하게 되고, 혼나거나 문제가 생기면서 공단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상사들은 신입들이 일을 알아서 하기를 바란다. 업무 매뉴얼 같은 것이 잘 마련돼야 할 것 같다. 회사마다 시스템이 다르니까 일 경험이 있는 신입도 회사에 새로 들어갔을 때 체계적인 교육이 없으면 적응이 어렵다. 혼나면서 배운다는 분위기가 많다.
 
- 전영성 : 무엇보다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어떻게 이들을 교육시킬 지에 대해 정부 기관, 공공기관에서 많은 노력 수반되어야 한다.
 
- 이창호 : 현실적으로 임금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으면 지원을 받아서 한다거나, 야근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게 한다거나 등. 회사도 직원도 조건이 충족된다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오래 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자레인지와 커피믹스 정도의 복지뿐이다.
 
- 장윤정: 고민이 이것저것 많긴 한데, 바뀌어야 하는 것 중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근로기준법 준수해서 운영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에는 노동자, 근로자를 위함이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부터라도 잘 지키는 게 우선인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연월차 눈치 보지 않고 쓰기,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임시공휴일에 쉬기 등 이런 부분만 지켜져도 복지포인트 등과 겸해서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