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1-01-07 11:37:25 수정 : 2021-01-07 11:52:23

[한국노동사회연구소] 1974가 외친다, 응답하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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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호 vol.356]

▲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식 장면 (사진=코레일/뉴시스)

[월간노동법률]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2021년 집단적 노동관계 전망은 어떨까? 이 질문을 속으로 되새기다 보니, <응답하라, 1974!>라는 가상의 드라마 제목이 홀연히 떠오른다. 19'74' 더하기 '47'은 2021이라는 재미없는 연상 때문은 아니다. '제도와 행동의 변증법'이라는 노동관계 이론의 고전적인 주제를 비교하며 음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이 펼쳐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74년의 경험을 불러내 2021년 이후를 전망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먼저, 1974년의 노동정책과 노동관계의 경험을 소환한다. 많은 사람의 인식과 달리, 내 판단에 유신정권은 노동정책을 억압으로만 일관할 수 없었고, 당시 노사관계는 자주 요동쳤다. 1974년 초는 이와 관련된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다. 다음으로, 얼마 전에 만들어진 2021년 이후의 노동관계 밑그림을, '비공식노동자의 시각'에 입각해 색칠해 볼 것이다. 이를테면 2020년 12월 10일 국회를 통과한 노동법 개정안은 노동관계라는 그림판 위에 국가가 붓으로 남긴 굵은 터치다.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이 될지는 이 밑그림을 건네받은 이의 상상력과 손놀림에 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1974년과 2021년의 그림을 비교해보며 노동관계에 있어 '제도와 행동'에 관한 소견을 간략하게 말할 것이다.
 
1974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수도권에 전철이 개통됐고, 초코파이가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과 한대수의 <물 좀 주소> 등이 발표됐다. 또한, 대통령 긴급조치에 기초한 정치-사회적 억압과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 불안도 있었다. 그런 한편, '노조 건설 붐'도 있었다.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노조 조합원 수는 매해 평균 약 5%씩 증가했다.(<표> 참조) 그런데 1974년 조합원 수 증가율은 19.7%로 불쑥 튀어 올랐다. 노사정 모두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시 관계자들은 '1-14 조치', 즉,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에 주목했다.
 
<표> 1970년대 초반 노동조합 및 조합원 현황
연도 조직(개) 조합원(명)
산별노조 지부 분회 전체 여성 남성
1970 16 419 3,063 473,259 115,378 357,881
1971 17 446 3,061 497,221 124,646 372,575
1972 17 430 2,961 515,292 134,487 380,805
1973 17 403 2,865 548,054 155,983 392,071
1974 17 432 3,352 655,875 192,653 463,132
* 자료: 노동부, 한국노동통계연감, 각 연도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목표로 했지만, 1974년 1월 14일 발표된 '긴급조치 3호'만은 결이 달랐다. 1-14 조치의 정식 명칭은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다. 1973년 발생한 오일쇼크의 여파로 국내경제가 흔들리자, 그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서민과 영세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부분은 조세부담 감면이나 금융 지원과 관련된 것이지만,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임금체불 가중처벌 조치도 포함돼 있었다. 아마도 1971년 이후 국가가 노조의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금지해, 노동자의 집단적 대항권을 완전히 억압한 것에 대한 반대급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곱씹어보면 조금 이상하다.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가중처벌한다 해도,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이 금지된 마당에 노조를 설립하면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까? 도대체 뭘 하려고 노조를 만든단 말인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당시 노조 설립을 주도한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속한 노동현장에 '국가의 힘', 특히 개별적 노동관계 법제도를 끌어들이는 것에 관심이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이를테면 노조 건설을 매개로 사업장이 근로감독을 받도록 하고, 근로감독관의 외피를 쓴 국가의 힘을 통해 사용자가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시정하거나 처벌받게 만드는 게 그들의 목표였으리라 상상한다. 노사 대등의 집단적 노사관계 같은 거야 그 이후의 문제고 말이다. 경영자나 관리자 대부분이 근로기준법을 '당연히 준수해야 할 보편적 기준'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가능한 가설이다.

노동법 제정 후 내내 유명무실했던 근로감독제도는 1970년 전태일이 목숨을 불살라 현실을 고발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고 조금씩 활성화됐다. 여전히 상시 15인 이하 기업에서 일하는 과반수 노동자는 적용 대상에서 배제됐지만, 전태일의 충격적인 죽음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은 이들이 노동현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근로기준법'과 '근로감독관'을 찾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물상인상, 임금체불, 고용불안 등을 짊어지고 1974년을 맞이한 노동자 중 일부도 괴로움 속에서 아마 이 이름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1-14 조치 소식을 들으며 희망과 기대를 증폭시켰을 것이다. 또한, 개중 활동적인 노동자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모아 노동청을 찾아가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는 수고를 기꺼이 하도록 동기화됐을 것이다. 개인이 노동청에 신고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이니 말이다.

이러한 행동들이 모여 만들어진 '노조 조직화의 물결'은 제도와 구조에 큰 충격을 줬다.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물결은 전태일이 만들어낸 구조의 균열로부터 분출해 근로기준법에 대한 열망과 결합했으며, 자신을 낳은 구조의 변화로 귀결됐다고 본다. 이를테면, 1975년 4월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으로 일부 조항의 적용이 상시 16인 이상에서 5인 이상으로 확대됐다. 1974년 초부터 언론에서 근로기준법 적용과 근로감독관 규모의 확대를 압박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노조 설립과 결합한 근로감독 신청의 폭증이 이를 매개했으리라 추측한다. 또한, 이 물결은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켰다. 예컨대 유신 정권의 붕괴의 도화선이 됐다고 평가받는 사건의 주역 'YH노조'를 비롯해, 이른바 '1970년대 민주노조'의 상당수가 1974년이나 그 직후 탄생했거나 거듭났다. 1970년대 민주노조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개인의 외침을, 토씨를 안 바꾸고 함께 더 크게 외침으로써, 사실은 유신정권이 그럴 역량이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1974년 벽두 발표된 1-14 조치는 그저 온정적이었고, 노동기본권을 신장하기에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새로운 주체의 행동 물결을 촉발했고, 그러한 행동 물결은 1-14 조치를 낳은 구조를 변화시켰고 새로운 시대로 가는 초석을 쌓았다. 2020년 12월 10일 세밑에 노동법제도가 상당하게 개정됐다. 변화된 법제도의 내용은 2021년 이후 한국 노사관계체계 내 주체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규칙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주체들의 실제 행동 방향은 이 변화된 규칙을 그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요컨대 주체들은 변화된 규칙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자기 해석에 기초해 움직일 것이다. 과연 어떤 주체들이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낼까?

2020년 12월 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는 10개 개정 법률안을 ▲첫째,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보장 강화 관련 ▲둘째, '노동시간 유연성' 강화 관련 ▲셋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고용보험' 적용과 징수 관련 ▲넷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강화 등으로 범주화했다. 노사대표단체의 해석 프레임에는 주로 첫째와 둘째 범주가 우선 들어왔던 것 같다. 먼저, 민주노총의 기자회견문은 해고자와 실업자, 그리고 기존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 보장의 부족에 우선 주목했고, 또한,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를 통한 노동시간 유연성 강화 시도를 개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개정안에 빠진 데 유감을 표시했다. 다음으로, 한국노총의 성명서도 거의 유사했다. 노동시간 유연성 강화 법안에 대한 규탄이 해고자, 기존 노조 전임자 등의 권리 보장 부족에 관한 유감보다 먼저 제시됐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경총은 노동쟁의와 관련해 자신들이 제시한 요구가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보완 입법을 요구했다.

달리 말하면, 노사대표단체의 프레임에는 셋째와 넷째 범주, 즉,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관련된 개정안이 포착되지 않았다. 물론 '결사의 자유 보장'이나 '노동시간 유연화' 관련 개정법에 대한 논쟁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이미 우리사회에 포괄적으로 자리 잡은 제도적 기반 위에서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는 실천이다. 반면,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관련된 법제도는 우리 사회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비공식노동 영역에 국가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안전망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추계에 따르면 221만명의 특수고용노동자 중에서 고용보험 가입자는 3.4%이다. 또한, 2020년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취약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는 727만5,000명 중 고용보험 미가입자는 458만7,000명이다. 코로나19로 착시효과가 사라지면서 드러난 우리사회의 듬성듬성한 민낯이다. 당연히 이쪽에 적용되는 제도가 더 의미 있고 효과가 크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표자'를 표방한다면, 비공식노동자 입장에서도 한 마디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사회적 규칙으로서 지금만큼이나마 존중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무규범 상태의 노동현실과 근로기준법의 이상 사이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과감한 행동, 그리고 희생이 있었고, 그러한 것들이 쌓여 우리 사회구조를 구성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오늘날에도 이름도 제대로 붙여지지 않은 채 존재하는 비공식노동자들이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제도를 적용받게 되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계속될 것이다. 법률이 통과돼도 비공식노동자들에게 사회안전망은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서비스 전달체계와 연결망을 촘촘하게 만드는 노력, 국가는 그저 돈 뜯어가는 놈들로만 생각하는 당사자를 설득하는 노력,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라앉히려는 노력, 그리고 당사자들이 자기 조직화해 목소리를 내도록 지원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나는 2021년 이후 노동관계에서 흥미로운 행동, 격렬한 감정적 표출과 목적의식적 실천, 그리고 새로운 구조적 변화는 주로 이 영역에서 발생할 것이라 전망한다. 
 
2021년 이후 본격화할, 비공식노동자의 현실과 새로운 사회안전망제도 지향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전개돼 어디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과정에서 노동관계 내에서 사회적 주체들의 위치가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기업단위든 초기업단위든, '임금-노동조건 결정 메커니즘으로서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의미 있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성장시키고 유지해온 조직이다. 그러한 실천과 희생의 누적을 통해 지금의 사회적 지위와 평판을 얻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조합원 대부분은 당연히 누리는 4대보험이라는 사회안전망을 누리지 못하는 수백만 명 앞에서 노동자대표로서 행동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잘할 수 있을까? 모른다. 어쨌든 잘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1970년대 말 한국노총이 민주노조 사건을 일방적으로 대응하다가 사회적 명분에 치명적 상처를 입고 한동안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관람포인트는 아니겠지만, 2021년 나의 노사관계 관람 포인트는 여기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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