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11-30 09:03:30 수정 : 2020-11-30 14:28:43

[정책] 포괄임금제 금지법, 현장 안착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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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55]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을 규제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1주 40시간. 이는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다.

근로시간제도는 모든 노동을 같은 기준으로 규제했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97년부터 탄력적ㆍ선택적 근로시간제,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 등 이른바 유연근무제가 도입됐다.

경직된 근로시간제도를 유지해오는 과정에서 특수한 임금제도가 사용됐다. 포괄임금제다. 실제로 일한 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 일정 시간을 초과근무한 것으로 간주해 이를 임금에 포함하는 제도다. 노동법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의원들을 향해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류호정의원실)

유연근무제가 도입된 뒤에도 포괄임금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연근무제의 경우 법이 정한대로 절차와 요건을 갖춰야 도입할 수 있지만 포괄임금제는 달랐다. 법에 규정된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절차나 요건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 기업이 유연근무제보다 포괄임금제를 선호했던 이유다.

무엇보다 유연근무제는 포괄임금제를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무 현장에서는 포괄임금제를 연장근로수당에 관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제도 취지나 실익을 따져볼 때 유연근무제로는 연장근로수당을 둘러싼 분쟁을 예방하기 어렵다. 유연근무제 중 하나인 재량근무제의 경우 포괄임금제를 대체할 수 있지만 적용 가능한 직종이 법령으로 제한돼 있어 모든 근로자를 아우르지 못한다.

포괄임금제는 1990년대까지 무분별하게 사용되다 2000년대 들어 조금씩 제한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정부는 근로감독 등을 통해 포괄임금제를 남용하는 사업장을 단속했다.

대법원도 나섰다. 대법원은 2010년 판결을 통해 포괄임금제 도입 요건을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근로시간제도를 적용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포괄임금제 역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에서 포괄임금제를 명시하고 있다 해도 근로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면 실제 일한 시간대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포괄임금제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도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류호정, 포괄임금제 금지법 발의..."대법 판례와 일치"

그러나 포괄임금제는 지금도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연간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낮추기 위해 포괄임금제 규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포괄임금제 규제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노동계가 미적거리는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연구원은 지난해 5월 포괄임금제 규제가 지연되면서 근로시간 단축 정책 기조가 훼손될 상황에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특히 ITㆍ게임업계를 중심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노동운동 불모지였던 ITㆍ게임업계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포괄임금제 폐지 요구에 힘이 실린 것이다.

이후 업계 주요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업장에서 여전히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성남 판교지역 ITㆍ게임업계 노동자 46.4%가 포괄임금제를 시행 중이라고 답했다.

서승욱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장은 지난 5일 포괄임금제 폐지 법안 공동발의 기자회견에서 "IT현장의 장시간 노동은 프로젝트별, 부서별로 다르게 적용돼 부당함을 증명하기조차 어려웠지만 노동조합과 함께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노동시간이 기록되면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며 "더 이상 포괄임금제 폐지를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사진=뉴시스)

정부가 침묵하는 사이 국회에서 포괄임금제 폐지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류 의원은 지난 8월 포괄임금제 폐지를 위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어 지난 5일에는 여야 의원들을 향해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고, 같은 달 24일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류 의원안은 기본급을 미리 산정하지 않고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를 할 경우 지급해야 하는 수당을 포함해 임금으로 주는 근로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기본급을 미리 산정하면서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에 따른 수당을 구분하지 않고 일정 금액을 임금으로 주는 근로계약도 금지된다.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때 지급하는 연차미사용수당이 포함된 금액을 임금으로 주는 근로계약 역시 금지하도록 했다.

류 의원 측 관계자는 "현재 법안은 대법원 판례 등과도 일치한다"며 "노동현장에서 포괄임금제를 악용한 임금체불을 막고 포괄임금제로 인한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입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류호정 의원안, 전면 금지 아냐...부작용 크지 않을 것"

전문가들은 포괄임금제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포괄임금제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포괄임금제 규제 방안을 법에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성혜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아예 폐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포괄임금제가) 법에는 없지만 판례로 (도입 요건 등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법에) 명시하면 더 명확해진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찬열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류 의원안과 같은 맥락의 법안을 발의했을 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도 이같은 내용을 언급한 바 있다.

검토보고서는 "입법을 통해 포괄임금제 적용을 제한해야 할 직종ㆍ직역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명시해 근로시간을 정확히 계산하도록 하고 법이 정한 가산임금 등을 산정해 주도록 하는 한편, 임금산정이 어려운 업무라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간주근로시간제 및 재량근로시간제 등이 우선 적용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는 견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류 의원안은 포괄임금제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 아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기본급은 기본급대로 산정한 다음 '연장근로 ○시간이 반영된 금액'이라고 명시한 뒤 포괄임금을 정하면 허용될 수 있다. 근로계약서에 연장근로수당이 얼마나, 몇 시간 분에 대해 지급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형태로 포괄임금 계약을 체결하면 되는 것이다.

임종호 노무법인 유앤 노무사는 "(류 의원안은) 구체적인 항목을 표시해서 체결하는 포괄임금 계약은 금지되지 않는다"며 "예를 들어 뭉뚱그려서 '이 안에 연장근로수당이 포함돼 있다'고 하는 것과 기본급을 표시하면서 기본급 외에 연장근로수당을 구분하지 않는 것만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이미 이같은 방식대로 포괄임금제를 사용하도록 행정지도를 해왔다. 다수의 기업들이 이미 이러한 형태로 포괄임금제를 운용하며 대비해왔다. 이 때문에 류 의원안이 통과되더라도 현장에 혼란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임종호 노무사는 "이미 기업들이 이 정도(류 의원안)는 예상하고 있다"며 "(류 의원안이 통과돼도) 특별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의원들을 향해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류호정의원실)

포괄임금제를 규제할 경우 유예기간을 충분히 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류 의원안은 법 공포 후 6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갖도록 했다. 차마 대비하지 못한 중소사업장을 위해서라도 단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현진 노무법인 예화 대표노무사는 "여러 가지 사항을 면밀하게 검토해야겠지만 주52시간제 사례처럼 사업장 인원 규모나 이런 것들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유예기간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면서 "예컨대 포괄임금제가 폐지되면 임금체계를 바꿔야 하는데 이런 내용들이 공론화되고 그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과정이 단시간에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류 의원 측은 이번 법안이 발의보다 통과에 목적이 있다며 최대한 많은 의원들과 함께 공동발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여야 의원은 총 13명이다. 정의당 의원 전원이 함께 했고 민주당 5명, 시대전환 1명, 무소속 2명이 참여했다.

류 의원은 앞서 공동발의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본래 임금은 정해진 기본임금에 실제 일한 시간외수당을 합산해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포괄임금제와 같은 반칙을 쓰는 기업이 늘어났다"며 "현재는 국내 10인 이상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2017년 10월 '포괄임금제 지도지침' 초안을 마련했지만 실태조사 중이라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표를 미루고 있다"면서 "(포괄임금제 금지법은) 일하는 시민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세상, 일하는 시민 누구도 일터에서 죽어가지 않는 세상을 만들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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