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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1-12-19 06:57:00

    수정 : 2022-01-11 14:37:43

[법원] ‘신의칙 적용’ 조정? 폐기?...통상임금 전합 판결 수정한 대법

2021-12-19 06:57:00



‘신의칙 적용’ 조정? 폐기?...통상임금 전합 판결 수정한 대법
[2022년 1월호 vol.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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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중공업 도크(사진=뉴시스)

    대법원이 통상임금 사건에서 사실상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도록 한 판결을 내놨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통상임금 판결을 통해 2013년 전원합의체 판단을 수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을 환영하는 쪽에서는 대법원 소부가 전합의 '과오'를 바로잡은 것으로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법원 소부가 신의칙 인정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합 판결을 사실상 폐기했다고 지적한다.
     
    19일 <노동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은 2013년 전합이 제시한 신의칙에 관한 법리를 사실상 수정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16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A 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소송이 제기된 지 9년 만에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같은 날 진행된 현대미포조선 통상임금 상고심도 동일한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앞서 A 씨 등은 현대중공업 전체 근로자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상여금 등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다시 계산한 다음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은 정기상여금을 2개월마다 100%씩 600%를 지급했다. 설ㆍ추석 명절상여금은 각각 50%씩 100%, 연말 상여금은 100%를 지급해 왔다. 모두 합하면 800%다. 현대중공업은 모든 근로자와 퇴직자에게 상여금을 일할 계산해 지급하면서도 명절상여금의 지급대상은 재직자로 한정했다.
     
    원심 뒤집은 대법..."신의칙 판단 기준 구체화"
     
    재판 과정에서 쟁점은 A 씨 등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였다. 현대중공업은 A 씨 측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약 4000억~6000억 원을 부담하게 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는 만큼 신의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전합은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청구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경우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볼 때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어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다.
     
    6년 뒤인 2019년 대법원은 신의칙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는 점을 추가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기존 법리를 전제로 신의칙 판단 기준을 구체화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법원 판결을 보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을 초래하는지 판단하려면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인한 실질임금 인상률, 통상임금 상승률 등을 살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기업의 당기순이익과 변동 추이, 동원 가능한 자금 규모, 인건비 총액, 매출액, 기업의 계속성ㆍ수익성, 산업계 동향 등의 사정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법원은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원심이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려해 판단했어야 한다면서 위법한 판결을 했다고 지적했다.
     
    1심은 기존 전합 판결을 토대로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놨다.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1심은 근로자들이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을 통해 보장받는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과 법정수당 근거가 되는 연장ㆍ휴일근로로 생산된 이득을 회사가 향유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되는 정도가 더 명확하고 심각해야 신의칙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심 판단은 달랐다. A 씨 등의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예상하지 못한 재정부담으로 재무적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면서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현대중공업이 회계법인을 통해 추산한 결과 근로자 3만8302명 기준(2014년) 추가 부담액은 약 6300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판단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2심은 "추가 부담액 6300억 원은 실적이 가장 양호한 2010년도 당기순이익의 약 20% 정도이고 2011년도 당기순이익의 약 30%, 2012년도 당기순이익의 약 60% 정도"라며 "2013년도 당기순이익을 훨씬 초과하는 금액인데 현대중공업이 2014년도 이후 거액의 당기순손실을 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추가 부담액으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안게 돼 재무적 위기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2심 판단은 현대중공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극복 가능성이 있었는지를 살피지 않아 위법한 판결이 됐다. 


    ▲대법원 전경(사진=대법원)

    '전합 판결' 조정? 폐기?...하급심에 미칠 영향에도 촉각
     
    대법원 판결 직후 법조계 일각에서는 예상된 결과였다는 반응이 나왔다. 최근 선고된 판결 경향을 보면 신의칙이 적용된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통상임금 사건에서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사실상 대법원이 결론을 낸 것 같다"며 "부도 직전과 같은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입장으로 굳혀진 것 같은데 최근 판결들도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건을 통해 전합 판단을 사실상 수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판결을 환영하는 쪽에서는 "전합 판단이 타당한 방향으로 조정됐다"고 보고 비판하는 쪽에서는 "소부가 전합 판결을 폐기했다"고 한다. 양쪽 의견을 종합하면 전합 판결이 수정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환영하는 쪽 시각을 빌리면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강행규정에 신의칙을 적용한 당시 전합의 과오를 바로잡았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애당초 강행법규 위반에 신의칙을 적용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판결이었다"며 "다시 전합을 열고 뒤집기는 애매하니까 기존 판례와 모순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의칙 적용을 제한하는 취지로 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하는 쪽은 대법원 소부가 전합 판결을 사실상 폐기한 것으로 본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대로면 신의칙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모든 경영상 변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3년 전합은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에 위태로움이 있으면 신의칙을 적용한다 했는데 경영자가 경영상태가 악화될 것을 예견 가능해야 하고 극복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됐다"며 "(대법원) 소부가 판례를 변경한 것이나 다름없고 신의칙 적용을 사실상 봉쇄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급심 판사들에게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하급심 판사들은 이번 판결을 '신의칙을 인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따질 때 기업이 경영상태를 예측하고 극복할 수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고 판시한 탓이다. 경제ㆍ경영 전문가 집단도 판단하기 어려운 기준이 사법부 몫으로 주어진 꼴이다. 이대로라면 하급심 판결은 결국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사관계법제팀장은 "사법전문가가 장래 경영상황의 개선 가능성, 악화 가능성을 판단해 신의칙 인정 요건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은 법원의 능력이나 법원에 부여된 권한을 뛰어넘는 판단 기능을 수행하라는 것으로 사법부 권한을 일탈하는 내용"이라며 "노동사건을 맡는 하급심 판사들은 앞으로 신의칙을 인정하지 말라는 행간을 누구나 다 읽었을 것인데 대법원이 이런 판단 지침을 숨겨서 내도 되나 싶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는 대법원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은 조속한 시일 내에 미지급 임금 지급계획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며 "이 임금은 3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현장에서 정상 근무시간 외에 연장근무, 야간심야근무, 휴일근무 등 시간외근무에 따른 피어린 노동력의 대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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