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2-01-14 15:18:00 수정 : 2022-01-17 09:08:19

근로자성을 새로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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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호 vol.369]

▲지난달 22일 서울시내 한 편의점에 배달 서비스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월간노동법률]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 공인노무사
 
'근로', '노동'은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하고 있는 특정한 법률관계를 가리키고 있다. 민법상 사람의 노무를 이용하고자 하는 계약(고용, 도급, 위임 등) 중에서 가장 필두에 있는 고용계약을 바탕으로 사용자와 노무자의 대등한(?) 권리ㆍ의무 교환을 상정한다. 본래 사적 자치 원칙에 따른 민사상 계약 자유에 따라 대등하거나 평등한 고용계약이 보편화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용자ㆍ근로자의 관계가 생성되는 노무(용역) 계약에서는 일방이 다른 일방의 인신 활동을 '도구'로 사용하는 측면이 있어(독일 민법) 사회법적인 보장체계에서 다른 일방(근로자)을 특별히 보호하는 기능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처럼 근로의 가치가 사회권적인 보장 측면에서 발현되고 있는데, 1)사회권적인 노동에 있어서는 근로기준법과 각 개별적 근로관계법에서 지위 보장ㆍ권리 보호를 꾀하고, 2)자유권적ㆍ사회권적인 노동에 있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과 각 집단적 노사관계법에서 노사 동등 지위ㆍ노동3권 행사를 보장하고 있다.

한편, 근로가 일제강점기 시대의 유물이거나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므로 일거에 근로라는 개념을 노동으로 치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논거도 빈약하고 실익도 적다. 엄연히 근로는 노동을 수행하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우리 고유어다. 용비어천가에서 '경천(敬天)'과 '근민(勤民)'라고 했거니와, 사료에서도 위정자와 백성들이 행하던 '근정(勤政)'과 '근로(勤勞)'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더욱이 해방 후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모두 근로와 근로자라는 개념을 쓰면서 양국의 헌법에도 근로(근로자, 근로인민 등등)라는 개념이 엄숙히 자리해 왔다.

그런데 사회권적인 근로권에 관한 노동 법리가 계속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노동 법리의 적용대상인 '근로자인지 여부(근로자성)'가 상당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왔던 측면이 존재한다. 근로 양태의 변형과 신종 근로 형태의 탄생에 따라, 21세기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도 노동법상 근로자성은 계속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근로시간이 대폭 재량 산정되고, 장소 구속 없이 재택ㆍ원격근로가 가능해졌으며 임금체계가 근로시간에 비례해 산정되지 않는 새 시대 노동환경의 일면을 보면, 과연 전통적인 근로자 개념으로 근로자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최근 플랫폼 노동환경 종사자(플랫폼노동자), 연구직ㆍ전문직ㆍ파견직ㆍ원하청 프리랜서처럼 각양각색의 노동 형태도 등장하면서 "사회법적 성격의 노동법이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입법적으로도 근로자와 동등ㆍ유사한 개념으로서 '노무제공자', '종사자'라는 파생용어까지도 입법화하고 있어 종래의 노동법 법리에 따라 근로자성이 포섭되지 못하는 경우에 개별 법률에서 그 (근로자적인) 보호를 실현하는 추세다. '의료법', '전공의의 수련환경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고등교육법(2011년 개정)',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여객운수사업법',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필수업무 지정 종사자 보호ㆍ지원에 관한 법률' 등을 보면 각 영역의 노무제공자, 종사자, 구성원이 입법적으로 근로자로서의 보호를 받게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새로운 미래 근로자성 논의가 필요하다. 단지 이것은 노동이나 근로냐 라는 용어의 문제를 넘어서서 근로자로서 보호하고 노동3권의 행사자로서 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 여타의 국가적 고용 지원 정책의 수혜자ㆍ수익자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로서 대한민국 노동사에 있어서 중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종래 근로자성과 관련해 대법원이 설시한 판단 기준은 대대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근로자 여부에 관해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 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①업무의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②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지 ③사용자의 지휘ㆍ감독을 받는지 ④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 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구속을 받는지 ⑤노무제공자가 비품ㆍ원자재ㆍ작업 도구를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⑥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⑦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代償)적 성격인지 ⑧기본급ㆍ고정급이 정해져 있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⑨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가 어떠한지 ⑩사회보장제도 법령에서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하라고 한다. 그런데 법원 판례군 외에도 노동위원회, 노동청, 검찰청, 근로복지공단 등의 처분 사례에서는, 같은 직종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근로자성이 나뉘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근로자로 편입되는 판단도 존재한다. 필자도, 도급ㆍ위임ㆍ자영의 성격을 가지거나(화물지입차주, 백화점위탁판매원, 구두제화공, 수선공ㆍ객공, 헤어디자이너 등) 임금체계가 성과급제(All-Merit)인 경우에도 근로자성이 인정된 사례를 목도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근로자성 판단과 관련한 엄격한 기준은 찾아보기 어렵다. 월급을 받는 연예인(일본 아이돌 가수), 고정훈련비와 식사ㆍ숙소ㆍ부대비용을 제공받는 스포츠 선수(미국 마이너ㆍ지구 운동선수), 자신이 유지ㆍ관리하는 차량으로 일시적인 운송업을 하는 기사(스페인 우버택시 종사자, 프랑스 배달 라이더)까지도 노동법적 보호를 받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노동법학계의 법리에서 백화점 위탁판매원, 골프장 캐디, 택배운송원, 학습지교사, 대학시간제교원, KTX승무원 등에서 근로자성 논의가 활발했던 것은 근로자성을 명확하게 선언하기 어려웠던 '사각지대', '회색지대'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만큼 사회적인 요구가 빈발했던 사람들이었고 미래에는 근로자성의 포섭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시대적 숙명과 과제에서 비롯했다고 보인다. 노동이 (극한의 종속성을 가진) 노예가 하는 것이라는 발상은 로마법에서도 기원한다. 그러나 노동이 인간 가치의 근본이 되고 근로가 신성시돼야 한다는 것은 근대 민법(독일, 프랑스 등)의 태동 이전에도 일반화된 것이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근로계약 또는 고용계약에서 더 이상의 상하 관계, 종속관계라는 것을 벗어나서 상호 권리, 의무를 확인하고 그 이행을 구하는 법제도적 변천이 이뤄졌다. 따라서 종속성을 기초로 판단한다는 판례 법리는 대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자! 이제, 21세기 근로관계의 개념은 대법원에서 제시하는 '실질적인 사용종속' 관계 판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시대의 근로관계가 "종속적인 노동보다는 생계수단으로서의 노동 전반"이라는 취지(김린, <근로자성 판단기준 -사용종속성을 넘어>, 법률신문 21.3.22.)와도 상통할진대,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인 부분이 일부 내재하고 (일정 부분) 대등한 지위에서 계약ㆍ업무수행이 동반하더라도 이들에게 섣불리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판례에서 그나마 미래적으로 유지될 것은 지배종속 정도ㆍ지휘감독 여부 등이 아니라 '근로 자체의 대상적인 성격', '계속성ㆍ전속성을 가지는 여부'일 게다. 결국 그 나머지의 경우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점차 완화되거나 폐기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근로자와 상호 사용 종속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는 근로자의 시간과 인력을 '빌려 쓰는' 지위에 있다. 즉, 계속적ㆍ전속적인 지위를 존중하고, 상호 간에 근로의 대상적인 성격으로 임금과 근로를 정성ㆍ정량으로 교환하도록 한다면, 한쪽에게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할 수 있다는 관념이 필요하다. 물론, 근로자성의 확대는 우리 정부가 법령의 조력, 정책적인 지원 등을 통해 근로자의 활동 및 안전을 보장하는 바탕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근로자성의 요소에 관한 증명책임은 근로자성을 다투는 자가 하도록 하는 방안도 학계에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옥스퍼드대학 폴 콜리어 교수는 "노동 기회 제공이 아닌 전방위적인 기본소득제"를 비판하면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자존감을 고양해 생산성을 발휘하는 주체"라고 표명한 바 있다.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보장하지 않고 소득을 부여하는 것은 개개인에게 큰 멸시라고도 표현한 바 있다. 이 외에도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 맨큐 교수는 "미래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노동"이며 "(노동이라는) 성장과 혁신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소득근로자에게 '음(陰)의 소득세[ex.근로장려금(EITC)]'를 주는 것이 적절하다"라고도 한 바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근로(노동)의 권리를 가지는 것을 넘어서서 근로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근로라는 것은 단지 사업주를 위해 성실히 일하라는 계약상 의무를 넘어서서, 국민 스스로 사회구성원으로서 그 자존감과 존재감을 확인하고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그)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헌법 전문)" 하는 절체절명의 책임과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로자인 국민에 대해서는 그 근로의 가치를 높이고 근로자를 존중하고 우대할 방안을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보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보호를 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을 보호받으면서, 더 나아가 적정임금과 고용증진의 여건에 상시 놓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2년, 작금의 노동환경은 단순히 MZ세대의 등장으로 징표 될 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노동환경에서 수많은 노동 종사자가 사회 구성원이자 근로자로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러한 시점에서 개별 사건 위주로 축적되는 판례군과 법리를 넘어서서, 미래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헌법 제32조 제3항)" 총론적이고 원론적인 논의가 다시금 필요하다고 본다.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변호사 /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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