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2-10-13 08:51:00 수정 : 2022-10-13 08:55:58

중대재해처벌법은 잘못 출제된 시험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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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vol.377]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월간노동법률]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1. 들어가며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시행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경영책임자 등'의 개념에 대한 논란, 안전ㆍ보건 확보의무 내용의 불명확성 및 의무이행 수준의 모호성, 과잉 처벌 등의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중대재해처벌법은 잘못 출제한 시험문제와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중처법은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ㆍ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사고 등 각종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ㆍ세월호 사건 등과 같은 시민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가운데, 경영책임자 등을 수범주체로 해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종사자와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각종 중대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엄혹한 현실임에도, 경영책임자 개인(특히 대기업 CEO)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등으로 거의 처벌되지 않는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경영책임자 개인을 의무주체 및 형사책임 귀속주체로 하는 극약처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중형 입법의 위하력과 ESG 경영 등 국내외 여건 급변으로 인해 대다수 CEO가 "변화하지 않으면 자신과 조직에게 큰 손해"라고 느껴 안전에 관한 CEO의 관심과 의지가 강화돼 대기업부터 스마트 안전기술 도입, 중처법 등 안전ㆍ보건 관계 법규 준수 컨설팅 등 안전체계를 더욱 고도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나오고 있다.

2. 중처법은 최고경영자(CEO)가 풀어야 할 필수 과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처법이 '경영책임자 개인'의 처벌에 주안점을 둔 나머지, 중처법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규정에 안전ㆍ보건에 관한 국제표준(ISO 45001)의 원칙 및 내용과 맞지 않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잘못 출제된 시험문제'라는 지적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예컨대, 중처법은 '경영책임자 개인'을 안전ㆍ보건확보의무의 유일한 의무주체로 설정한 반면, ISO 45001은 안전보건의 이행책임이 기본적으로 현업부서에 있고 안전보건부서는 현업부서의 안전보건을 촉진ㆍ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전제로 최고경영자(Top Management)·작업자를 비롯한 조직의 모든 구성원의 의무와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처법은 도급인과 수급인 중 누가 의무주체인지가 불명확하지만, ISO 45001은 도급인과 수급인의 역할이 구분돼 있다.

이렇듯 중처법이 경영책임자 개인의 엄중한 처벌을 통한 중대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경영계는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 Chief Safety Officer) 선임 시 최고경영자인 대표이사(CEO)를 면책시켜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은 국제표준시스템인 ISO 45001의 자율규제적 성격의 표준 요구사항(안전보건경영시스템 수립, 실행, 유지, 지속적 개선/리더십과 근로자 참여/기획/지원 : 자원, 의사소통 등/운용 : 위험요인 제거, 비상시 대응/성과 평가/개선) 중 중요한 부분을 기본 틀로 삼아 법제화했다. 물론 제정 과정에서 전문가 및 사회 각계각층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서둘러 제정되는 바람에, 국제 기준의 원리와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일부 전문가로부터 잘못 출제된 시험문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ESG가 기업 경영의 중심축인 상황에서 중처법이 ESG 중 S(사회적 책임)를 실현하기 위한 선도적 입법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ESG의 사회분야(S) 의무공시에 산업재해 관련 사망ㆍ부상ㆍ질병 통계와 조치내용이 포함됐고, ESG의 S를 Stakeholder(이해관계자)로 보고 고객, 직원(내외부),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사회적 약자 배려와 소통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 시민재해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탑-다운 방식의 CEO 중심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법제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처법은 보호 대상인 '종사자'에 자신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수급인의 근로자 등까지 포함시켜 원청인 CEO에게 '원ㆍ하청 안전공동체' 구축을 의무화했다. 그래서 대기업은 안전역량이 떨어진 하청을 지원해 협력사의 안전역량을 제고할 책무가 있다. 특히 위험작업 수행에 따른 사망사고가 다수 발생하는 영세 기업에 대한 정부 및 대기업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므로 중처법의 내용에 일부 잘못 출제한 시험문제 항목이 있더라도, 중처법은 이러한 엄중한 ESG 경영 여건에서는 기본적으로 CEO가 법 제4조와 제5조를 바탕으로 솔선수범해 풀어야 할 필수 시험과목이다.

따라서 안전 리더십을 발휘해 솔선수범해야 할 CEO가 문제가 잘못 출제됐다며 과목 폐지를 주장하거나, 전면 시험 거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CSO를 내세워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는 CEO의 태도는 기업의 신뢰도와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기업 경영실무나 법리적으로도 다음과 같이 위법ㆍ부적절한 위임이다. 

첫째, 개정 산안법 제14조에 의해 일정 규모의 주식회사 대표이사는 매년 안전보건 경영방침, 안전보건 관련 조직, 예산 등을 포함한 안전ㆍ보건 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는데, 이는 중처법상의 경영책임자 등의 주요 의무에 해당해 대표이사라는 신분에 주어진 법률상의 의무를 차 하급자인 임원급 CSO에게 위임할 수 없다.

둘째, 안전ㆍ보건업무가 생산ㆍ효율, 품질, 신뢰성, 인사ㆍ기획 업무, 국내외 공급망 진출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기업 실무상, CEO가 최종적으로 국내외 경영 여건 및 조직 전체를 조망ㆍ고려하면서 사업 전반의 안전보건에 관한 예산ㆍ조직ㆍ인력 등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도 "중처법상 의무와 책임의 귀속주체는 '원칙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前者)이고, '이에 준해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後者)'이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예산ㆍ조직ㆍ인력 등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대해 대표이사에 준하는 정도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면 그 역시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한다. '후자'가 선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자'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중처법 위반 수사과정에서도 CSO가 위와 같은 최종 권한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고 CEO만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CEO가 '안전경영'에 대한 확고한 리더십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3. 맺는말

ESG 및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시대에 경영과 일체화된 전사(全社)적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구축ㆍ운용하는데 있어 CEO가 확고한 '안전 리더십'으로 안전경영 방침과 비전을 모든 구성원에게 제시하고, 기업 여건에 맞는 인력ㆍ시설ㆍ장비 등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CEO가 안전경영의 전면에 나설 때 효과적인 중대재해 예방시스템이 구축되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 CEO와 기업의 사법 리스크도 낮아질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안전경영과 관련한 CEO 본연의 의무를 CSO에게 전부 위임하는 것은 위법하고 부적절한 위임이다. 그런데 중처법상 경영책임자의 광범위한 의무를 기업 규모가 클수록 CEO 혼자 이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의 안전을 좌우하는 CEO를 원칙적 의무주체로 하되, 안전베테랑인 CSO와의 합리적 업무 분담 체계가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중처법은 CEO가 CSO와 함께 풀어야 할 필수 시험과목이다. 산안법 제14조와 중처법상 중복되는 대표이사의 주요 의무에 해당하는 안전경영방침 설정, 안전 인력 및 예산 편성 등은 CEO의 의무로, 나머지 중처법 및 시행령상 의무는 CSO가 위임받아 이행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중처법의 의무주체 선정에 있어 CEO와 CSO 중 한 사람만 택일적으로 선택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조직ㆍ업무구조 등을 고려해 양자를 모두 의무주체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CEO와 CSO 양자를 병존적 의무주체로 인정할 경우 각 의무주체의 위상과 역할에 맞는 의무 이행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중대재해 발생 시 그 의무이행 위반에 대해 각 책임 영역에 따른 '개별적 행위책임'의 귀속이 가능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경영책임자 등'의 개념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법 제2조 제9호를 다음과 같이 개정할 필요가 있다.
 
'경영책임자 등'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나. 가목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다.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기업의 장,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부터 제6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공공기관의 장

국회와 정부는 기업 스스로 적정 수준의 재해예방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전원리가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노사 및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법적 규제와 자율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찾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을 해야 한다. 자율적ㆍ능동적으로 각자의 기업 여건과 역랑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한도 내에서(SFARP)' 국제기준에 맞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개정해 더 이상 잘못 출제한 시험문제라는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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