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아시아나 항공 통상임금 소송서 캐빈어학수당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지만...
-"아시아나, 단기간 수익 개선 어렵고 중대한 경영어려움...신의칙 적용"
-마지막으로 신의칙 적용한 지엠 판결 이후 6년 만
-수익개선 가능성 적고, 상여금 지급 축소에 근로자 과반수가 결단 내렸던 점 등 고려



대법원이 통상임금 소송(주심 박정화)에서 실로 오랜만에 신의칙 법리를 적용한 판결을 내놔 큰 화제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는 지난 6월 25일, 근로자 이 모씨 등이 아시아나 항공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했다.
 
아시아나 항공사는 국제선 캐빈승무원들을 대상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 공인어학자격시험 취득점수와 구술시험 합격 여부를 기준으로 캐빈 어학수당을 매월 지급했다. 근로자들은 "어학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이를 기준으로 각종 수당을 계산한 다음 부족분을 추가로 지급하라"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캐빈어학수당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심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회사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임금협약에 따라 정기적-계속적으로 지급되는 이 사건 캐빈어학수당이 소정근로의 가치 평가와 무관하게 지급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며 "원심(2심)이 캐빈어학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것은 법리 오해의 잘못이 있다"라고 판단해 원심 판단을 파기하고 캐빈어학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런데 대법원은 아시아나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신의칙을 적용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앞서 원심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사는 2010년부터 채권자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구조조정절차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상당한 채무를 부담하고 있고, 설립 이후 한 차례도 누적 당기순이익이 플러스인 적이 없다"며 "부채비율이 600~700%에 이르며 저가항공사와의 경쟁으로 수익성 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4년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어 상여금 지급을 축소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서 근로자 과반수가 회사의 경영 상태를 고려해 결단을 내린 점 등을 보면, 추가법정수당을 지급할 경우 아시아나항공사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번 대법원의 신의칙 적용은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현재 법원에서 계류 중인 통상임금 사건 숫자는 여전히 많다. 통상임금 사건은 소 제기가 되는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신의칙이 마지막 쟁점으로 불거진다. 지금까지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은 거의 힘들다는 분위기였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경영상태가 매우 어렵던 시영운수 사건에서 대법원에서 신의칙을 적용한 원심을 파기한 이후, 통상임금 소송에서 앞으로 신의칙 적용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었다"며 "아시아나 사건은 시영운수 사건 만큼 신의칙 적용이 쟁점으로 주목받던 사건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매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한진중공업의 경우 채권단 관리 중이었는데도 대법원은 신의칙 적용을 부정했을 정도로 엄격해지는 분위기였다. 노동계 관계자들도 "도산 위기 수준이 아니면 적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탓에 일부 기업의 경영난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신의칙 적용에 엄격했던 대법원의 기준이 일부 완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이준희 경총 노사관계법제팀장(노동법 박사)은 "대법원에서 신의칙을 인정해 청구를 부정한 것은 한국지엠 사건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며 "아시아나 항공의 장기간 지속된 재정상 어려움과 자구노력,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했던 상황을 보면 신의칙 적용을 긍정한 법원의 결론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신의칙을 적용하는 시점이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와 눈길을 끈다.
 
한 노동경제학 박사는 "신의칙 적용 기준이 과거에 비해 매우 엄격해진 점은 공지의 사실이지만, 대법원이 신의칙을 적용하는 시점에 대해서 의문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가 문 닫을 정도의 상황에서야 신의칙을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구조조정 등을 통해 살아남을 기회가 있는 상황에서 신의칙을 적용해야 일자리도 보존할 수 있는게 아닌가"라며  "현재 법원의 기준은 도산 직전의 기업에게만 적용되고 있는데, 경영상황 현실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한편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단체협약에 따라 월 소정근로시간을 226시간으로 정해 통상임금을 계산한 후, 이를 기초로 각종 수당을 계산해 지급해 온 것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근로자들은 209를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토요일 4시간을 유급휴일로 간주해서 통상시급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쟁점인 휴일대체에 대해서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시아나는 특정 휴일을 근로일로 하고 통상 근로일을 휴일로 교체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재판부는 "아시아나가 근로자들의 동의를 얻어 적법하게 휴일대체를 한 이상 별도의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도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곽용희 기자 kyh@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