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병원 의사들이 병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교원노조법 개정 이후 의료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의과대학 교수들로 조직된 노동조합 깃발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인제대 의대에서 의대 교수 노조 깃발이 올랐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노동조합(인제의대 교수노조)'은 올 5월 창립총회를 열고 지난달 초 노조 설립증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국내 최초로 의대 교수노조를 설립한 곳은 아주대다. '아주의대 교수 노동조합(아주의대 교수노조)'은 지난 3월 설립총회를 열었다. 4월에는 전국의과대학교수노동조합(의교노)가 설립됐다. 
 
대형병원에서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노조가 설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9월 허위 임상시험에 관한 공익제보를 했던 의사가 해고된 사건을 계기로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의사노조가 최초로 설립됐다. 이는 2018년 8월 중앙보훈병원 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다. 

최근 설립된 의대 교수 노조의 차이점은 직위다. 의사라는 '근로자 신분'이 아닌 교원으로서의 '교수'라는 직위를 바탕으로 조직된 것이다.
 
그동안 의대 교수들은 교원노조법을 적용받지 못해 노조를 설립할 수 없었다. 노조 설립 주체인 교원이 초ㆍ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한 교원으로 한정된 탓이다. 

그러나 2018년 8월 헌법재판소는 이에 관한 교원노조법 조항을 '헌법불합치' 판결하고 대학 교원의 단결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대학교원들의 노조 설립이 가능해졌다. 다만,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개정 교원노조법, '의대 교수 노조' 빗장 풀어
 
의대 교수 노조 설립 바람과 유사한 사례로는 이달 출범한 소방노조가 있다. 지난해 12월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방관들도 노조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양대 노총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은 지난 4월부터 소방공무원 노조 설립을 위한 물밑작업을 진행했다. 이달 6일 개정 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되자 소방공무원 노조들이 연이어 깃발을 올렸다.
 
의대 교수 노조는 근로 여건 등을 중심으로 병원 운영에 관한 교수들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삼을 예정이다. 당장은 노조를 발판으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데 무게중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

노재성 아주의대 교수노조 위원장은 "오는 22일 병원과 첫 번째 교섭을 하는데 첫 교섭인 만큼 휴가 등 세부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요구를 할 계획"이라면서 "장기적인 목표는 노사협의회 등의 수단을 이용해 병원 경영이나 정책 결정에서 교수들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위원장은 "최근 몇 년간 대형 병원 사이로 매출 증대 등 손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돈벌이보다는 환자들이 안전해질 수 있도록 교수들이 목소리를 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큰 틀에서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의대 교수 노조를 계기로 의사노조에 대한 바람도 의료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 "의사노조 설립은 시대적 요구"라면서 회원들이 원한다면 의사노조 TF를 만들어 지원하겠다고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5월 대전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주요 안건 중 하나로 '병원별 전공의노조 설립'을 논의했다.
 
실제로 전공의들 사이에서 노조 설립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의료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주예찬 건양대병원 전공의는 "전공의들이 보건복지부나 수련평가위원회의 규율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협회 활동만으로는 권익 실현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조 설립을 바탕으로 전공의들이 단결하고 단체행동권을 실현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의사노조 설립 바람이 앞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중앙기획실장은 "봉직의(페이닥터)와 같은 경우엔 사용자와 고용ㆍ임금ㆍ근로조건에서 노조를 통해 해결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 텐데 이는 의사라는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지금은 소수 병원이지만 머지않아 의사노조 설립이 전체 병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박소망 기자 hop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