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전남 여수시 화치동 여수국가산단 내 입주기업 여천NCC에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폭발사고 발생해 경찰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폭발사고를 계기로 국가산업단지에서 반복되는 인재(人災)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지난 11일 여천NCC 3공장에서 열교환기 기밀시험 중 열교환기 덮개가 이탈되면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노동자 4명이 숨졌고 4명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노동부는 곧바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와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여수국가산단은 1966년 조성돼 석유화학공장을 중심으로 국가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여수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94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생산액은 48조859억 원, 수출액은 176억 달러에 달한다. 2020년 12월 기준 2만4390명의 근로자가 여수국가산단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여수국가산단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의 화약고'다. 위험물질을 대량으로 저장ㆍ취급하고 있어 화재, 폭발, 가스 누출 등의 위험이 높은 정유ㆍ석유화학업체가 산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조성된 지 반세기가 넘어 시설 노후화로 인한 대형사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여수시에 따르면 이번 사고를 포함해 2017년부터 최근까지 여수국가산단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모두 65건으로 48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7명, 부상자는 31명으로 집계됐다.
 
이번 여천NCC 폭발사고 불과 두 달 전에도 비슷한 폭발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여수국가산단 내 유기화학제품 제조업체인 이일산업에서 원료탱크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3명이 숨졌다.
 

▲여수국가산단여천NCC폭발사고 대책위원회는 14일 오전 여수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0년 노동자의 목숨과 희생으로 키워진 여수국가산단, 이제는 노동자의 목숨과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노동과세계)

노동계, "공동조사단ㆍ안전관리특별법 제정" 촉구
 
노동계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3공장 폭발사고를 향해 작심 비판에 나섰다.
 
노동계는 여수국가산단에서 반복되는 화재, 폭발, 누수 등 중대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선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관련 법 제ㆍ개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여수국가산단 여천NCC 폭발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는 14일 오전 여수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0년 노동자의 목숨과 희생으로 키워진 여수국가산단이 이제는 노동자의 목숨과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수국가산단 55년 동안 기업의 이윤과 배불리기를 위해 반복되는 중대재해로 목숨과 희생을 강요당해 왔던 적폐의 역사를 청산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으로 대전환하는 여수국가산단 대개조 투쟁을 노동자들의 힘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책위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등이 참여했다.
 
대책위는 이번과 같은 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천NCC 폭발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이 추천한 전문가가 포함된 민관 합동 공동조사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 원인 조사부터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까지 중대재해의 당사자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도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당시 노동계로부터 '처벌 강화로 산재사망을 줄이자'는 법 제정 의의를 달성하는 등 제정 자체로 성과가 존재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발주자 책임 삭제 등 법안 국회 통과 과정에서 원안이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대책위는 "법 개정을 통해 법 위반에 대한 법적 처벌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수립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일부개정안은 지난 1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태다.
 
또 여수국가산단을 포함한 '산업단지 시설물 안전관리특별법' 제정도 촉구했다. 대책위는 "여수국가산단을 포함한 국가산업단지 내 시설물은 안전관리특별법에 따라 관리받지 못하고 있다"며 "노후 설비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에는 관리ㆍ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중소규모 사업장에는 관리비용 등을 지원해주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산재전문 공공병원 설립 필요성도 강조했다. 석유화학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의 경우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한 초기 진료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산재를 전문으로 하는 공공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책위는 "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현장에서 오늘도 목숨을 내놓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며 "억울하게 희생된 노동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힘과 투쟁으로 여수국가산단을 바꿔 나갈 것이며 노동자의 목숨과 삶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