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뉴시스)

삼성전자 노사가 2021년ㆍ2022년 임금교섭에 합의하고 오늘(10일) 협약식을 개최한다. 삼성전자 창사 53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전자 노사가 체결한 교섭이라는 데 의미가 있지만 임금교섭의 핵심인 임금인상률이 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도 나온다.
 
10일 <노동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은 최근 회사와 마련한 잠정합의안을 조합원 총회를 통해 의결했다. 공동교섭단 소속 노조는 삼성전자사무직노조, 삼성전자구미지부노조, 삼성전자노조동행, 전국삼성전자노조 4개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2021년 임금교섭 협상을 진행했지만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임금교섭은 해를 넘겼다. 이에 노사는 2년치 임금교섭을 묶어서 진행했고 본교섭 11회, 실무교섭 20회 등 총 31회 교섭을 실시한 끝에 최근 합의에 이르렀다.
 
임금인상률, 노사협의회 결정 유지

임금인상률은 지난해 기본인상률 4.5%에 성과인상률 3.0%를 더한 7.5%, 올해 기본인상률 5%에 성과인상률 4%를 더한 9%로 결정됐다.
 
그러나 임금인상률은 회사와 노조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회사가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한 것이다. 노조는 앞서 회사가 임금인상률을 발표했을 당시 노사협의회를 통한 임금인상률 결정은 불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이후 협상에서도 기존 임금인상률에서 추가적인 임금인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사는 회사가 노사협의회와 결정한 임금인상률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노사는 명절 연휴 기간 출근자에게 지급하는 명절배려금 지급 일수도 기존 3일에서 4일로 늘렸다. 올해 초 신설된 재충전휴가 3일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올해에 한해 연차수당을 보상해준다는 내용도 합의를 이뤄냈다.

또 휴식 제도 개선과 임금피크제를 위한 노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휴식 제도 개선의 경우 이번 교섭에서 노조의 핵심 요구 중 하나였다. 전국삼성전자노조가 교섭에 앞서 조합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휴식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국삼성전자노조 관계자는 "이전엔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 외에는 휴가가 전혀 없었던 상황이라 휴식권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높았었다"며 "휴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 아래 노사가 관련 TF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도 TF 논의 의제다. 지난 5월 정년을 유지하는 대신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후속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앞서 대법원 판결 직후 회사에 임금피크제 폐지와 보상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은 "불합리한 임금피크제도 운영으로 금전적인 피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한다"며 "보상이 없으면 소송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노동계 일각에선 "노조 무력화 우려" 지적도

현재 전국삼성전자노조는 TF 구성과는 별개로 노조 차원의 임금피크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전국삼성전자노조 관계자는 "TF 구성에 합의하면서 임금피크제 개선에 대한 회사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임금피크제로 인해 삭감된 임금을 돌려받는 건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조 차원에서 소송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교섭 중 농성을 통해 재충전 휴가 3일을 가져올 수 있었고, 휴가 미사용 시 연차수당을 보상해주는 내용을 합의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한다"며 "앞으로도 휴식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에 힘써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지난해 10월 시작한 교섭이 너무 늦게 마무리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며 "이번이 첫걸음을 뗐다고 생각하고 아직은 부족한 노사 간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는 삼성전자가 노조와 체결한 첫 교섭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임금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임금인상률을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회사가 노조를 '진정한' 협상의 파트너로 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 의장을 맡는 오상훈 삼성화재노조 위원장은 이번 삼성전자 합의 결과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합의"라고 평가했다.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는 금속노련 산하 삼성그룹노동조합의 연합 조직으로 전국삼성전자노조, 삼성디스플레이노조, 삼성웰스토리노조, 삼성화재노조 등 12개사 노조가 소속돼 있다. 삼성그룹을 상대로 공동 요구와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오 위원장은 "회사가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진정으로 보장하고 인정한다면 노사협의회를 통한 근로조건 변경과 임금인상률 결정을 해서는 안 되는데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에서 노사협의회가 결정한 임금인상률을 노조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시행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임금인상률 결정은 노조를 고사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폐기 선언을 한 이후에도 노동3권을 진정으로 보장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노사관계 큰 발걸음...상생 노력할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임금인상률을 노사협의회와 결정하게 된 배경을 묻는 말에 "매년 3월부터 새로운 연봉을 받게 돼 합의가 적어도 2월 말까진 마무리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당시 노조에 단독임금협상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작년 임금협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올해 임금협상을 진행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최종적으로는 노사협의회에서 결정된 안에 노사가 합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해 첫 단체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이번에 임금협약에 합의하면서 노사관계에 큰 발걸음을 뗐다"며 "회사는 건전한 상생의 노사문화 정착을 위해 노조와 함께 대화하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임금협약식을 개최한다. 임금협약식이 마무리되면 이번 합의 결과인 휴식 제도 개선ㆍ임금피크제 TF 구성 등 후속 조치를 이어 나가게 된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