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월간 노동법률 창간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방향'이 월간 <노동법률> 주관, (주)중앙경제 주최, 한국공인노무사회 후원으로 열렸다. (이지예 기자 jyjy@)

한국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노동법적 쟁점을 진단ㆍ분석하기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월간 <노동법률>은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월간 노동법률 창간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방향' 심포지엄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은 학계와 법조계, 노사정 등 국내 최고 권위자들이 발제와 토론을 했으며, 150여 명의 기업 인사노무실무자, 노조 관계자 등이 참석해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심포지엄은 한국 노동시장의 당면 과제로 꼽히는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정년연장의 경우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을 앞둔 한국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지난 6월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위해 추진할 과제 중 하나로 '고령자 계속고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제시하고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또 다른 주제인 임금체계 개편은 정년연장과 맞닿아 있다. 정년연장이 현실화됐을 때 기업의 인건비 부담, 청년 일자리 감소 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지난 5월 대법원이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한 것 역시 이 같은 논의를 촉발시켰다. 직무ㆍ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는 핵심 노동개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적소적재 직무주의…"정년 의미 없는 사회돼야"
 
이날 심포지엄 주제 발표는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의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방안'으로 시작됐다.
 
유 교수는 한국의 기업들이 경제성장과 함께 조직의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우수인재의 유치, 동기부여, 장기근속을 위한 수단으로 호봉제 연공서열형 임금제도 등 속인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고 유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연공서열형 임금제도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신입사원 초임 상승, 고연차 구성원이 높아진 연령 분포, 60세로의 정년연장 법 개정 등 세 가지 조건을 만나며 기업의 부담이 됐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과거 신입사원 때는 생산성 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생산성 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구조여서 이연임금의 논리가 잘 적용됐지만, 신입사원의 초임이 높아지면서 이연임금의 논리가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연공서열형 임금제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돼 기업의 부담이 늘어났고, 이런 상황에서 정년이 또다시 65세로 늘어나게 되면 그 부담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한,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과 변화 측면에서 연공서열형 임금제도는 그 역할을 다했다"며 유 교수는 그 대안으로 직무를 먼저 정의하고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아 그 일을 맡기는 '적소적재 직무주의'를 제안했다.
 
적소적재 직무주의의 임금체계로는 직무급을 제시하며 '직무의 상대적 가치'와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숙련과 경험'에 따라 직무급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유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직무주의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또한 서로 한발씩 양보한다면 노사 모두에게 바람직하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우수한 인재가 오랜 기간 조직에 기여할 수 있게 되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나이와 무관하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위한 제언으로는 ▲정부가 많은 수의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사용자로서 적극적으로 선도 역할을 할 것 ▲임금체계의 단순화 필요성 ▲직무의 생성과 소멸에 대응하는 노동법과 노동정책 마련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리더십 뒷받침 ▲노사 모두 전향적인 자세 등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고령자 고용지속ㆍ일자리, 헌법적 과제"
 
두 번째 발제는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노동법적 쟁점'을 주제로 이어갔다.
 
권 교수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한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쟁점을 소개하며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너무도 쉽게 연령을 기준으로 정책과 법을 설계했던 것을 다시 고민하고 유념하게 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앞서 대법원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 그 조치가 무효인지 여부는 ①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②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③임금삭감에 대한 대상(代償)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④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권 교수는 "최근 임금피크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로 노동현장에서 많은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대법원의 지적한 것처럼 과도한 불이익의 부과나 사후적인 도입목적 불이행 등의 문제가 실제로 발생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임금피크제 그 자체가 연령차별 위반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대법원이 연령차별로 본 임금피크제란 명목만 임금피크제일 뿐 단지 연령을 기준으로 한 임금삭감조치에 해당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정년연장형이 아닌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식의 해석도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령자 계속고용정책의 의미에 대해선 "현대적 의미의 일자리는 단순히 임금 획득만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 아니라 근로자가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며 "때문에 일자리를 책임지는 국가는 헌법적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노동법적 제도체계 개선 방향에 대해선 "일자리를 제공하고 유지하는 것이 고령자 자신은 물론이고 사용자에게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고령자에겐 일자리 제공이 실질적인 유무형적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사용자에겐 기업 비용절감은 물론 생산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제시하고 "임금은 '근로가 제공되는 사실'에 대한 '대가'로서의 속성을 본질로 하는 금품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사정 모두 '정년연장'엔 공감…방식은?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양근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임금ㆍHR정책팀장 ▲임은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1본부 실장 ▲권순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박경구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사무관이 차례로 관련 토론을 벌였다. 좌장은 하갑래 단국대 교수가 맡아 토론을 진행했다.
 
"정년연장 이전 임금체계 개편 선행돼야"
 
양근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임금ㆍHR정책팀장은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경제ㆍ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고령자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고령 인력 활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경영계도 공감한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양 팀장은 고령자고용 활성화에서 중요한 핵심은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하게 하는 것'보다는 '오래 노동시장에 남아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과제로는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 개편 △고용형태 다양화, 유연근무제 확산 등 인력 운영의 유연성 강화 △고령자 특화 직무훈련 프로그램을 강화 등을 제시했다.
 
양 팀장은 이 중에서도 특히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 팀장은 "정년 60세 의무화와 동시에 법제화된 의무였던 임금체계 개편은 실제 현장에서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추가적인 정년연장 논의 이전에 임금체계 개편이 현장에서 반드시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금피크제, 고령자 임금삭감으로 남용돼"
 
노동계를 대표해 이날 토론에 나선 임은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 실장은 "연공형 임금체계를 고용불안의 원인으로 간주해 임금 및 고용 유연성을 꾸준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고용연장을 조건으로 연령에 연동된 임금피크제를 통한 임금삭감과 노동조건 저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정당화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 근본적인 정책 처방이 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임 실장은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해 정년연장형과 정년보장형에 임금피크제를 적용했던 사례를 들며 "그 결과 '임금피크제=임금삭감'이라는 논쟁으로 노사 간 극심한 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빚어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실업이 완화되었다는 근거도 확실하지 않다"며 "오히려 임금피크제가 본래 취지와 달리 인건비 감축을 이유로 신규 채용은 외면하면서 고령자의 임금삭감을 위해서만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과 임금 차등 합리화나 연령차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직무ㆍ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에도 "연공급 임금체계 해체를 통해 장기근속자의 임금삭감과 저임금 고착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임 실장은 "연공급 임금체계는 한국적 노사관계 속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협의(대화)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산물이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온 결정방식으로 현장마다 임금체계가 달리 운영하고 있어 이를 일률적으로 개편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임금체계 개편, 절차적 쟁점 등 살펴야"
 
권순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수행하는 업무의 가치가 보상과 연결되면 중장년층 고용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며 직무급 도입 및 확산에 힘을 실었다.
 
권 변호사는 앞서 유 교수가 발제에서 제시한 △정부의 선도적 역할 △임금체계의 단순화 △노사 모두의 전향적 자세 등이 직무급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동의하면서 "임금체계의 단순화 및 노사의 전향적 자세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법률적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예를 들어,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임금의 결정ㆍ계산ㆍ지급 방법 등을 기재해야 하는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근로자가 종전에 가지고 있던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해 근로조건을 낮추거나 복무규율을 강화하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취업규칙이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경우엔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가 필요한데, 집단적 동의에 이르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때 대법원은 그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ㆍ적용해야 한다며 사회통념상 합리성 인정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취업규칙 변경 관련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지, 집단적 동의의 주체, 집단적 동의 없는 경우 무효인지, 사회통념상 합리성 인정되어 유효인지 등이 임금피크제 관련 절차적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임금체계 개편에 제언자 역할 할 것"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박경구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사무관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임금체계 개편 방향을 소개했다.
 
박 사무관은 정부의 정책 추진 배경으로 "우리나라가 인구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노동 관행이나 규범으로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정부는 직무ㆍ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연공성이 강한 임금체계는 과거엔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등 적합한 측면이 있었지만, 고령화가 진행 중인 현재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기업에선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들고 청년들에게 취업 어려움을 줄 수 있고 근로자에게는 근로의욕 저하, 기업에게는 생산성 저하 우려를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사무관은 임금체계가 노사 자율의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정부가 '제언자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사무관은 "결국 정부의 역할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현장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며 "정부의 역할은 임금 정보 공개, 가이드라인 마련 및 배포,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 확대 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지난 7월부터 미래시장노동 연구회를 운영 중에 있다. 정부는 연구회에서 발표하는 권고안을 검토한 후 정책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박 사무관은 "오늘 심포지엄에서 나온 내용들 역시 귀 기울여 청취하고 관련 고민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