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빌딩 6층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한국노총이 11월 5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각종 노동현안에 대한 한국노총의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열렸다. (사진=뉴시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노동시간유연화와 직무ㆍ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멈추고,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중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오는 11월 5일 이 같은 요구를 담아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한국노총은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빌딩 6층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이 참석해 정부 노동정책과 최근 노동현안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정부 노동개혁, '저임금-장시간 노동' 낳아"
 
이날 한국노총은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정부 노동정책으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할 수 없고 당사자인 노동계와 협의조차 없어 절차적ㆍ내용적으로 하자가 크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6월 고용노동부는 급변하는 노동시장 환경에 발맞춘 노동시장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노동시장 개혁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직무ㆍ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골자로 한다. 현재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시장노동연구회가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며 11월 권고안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연구회가 제출한 권고안을 검토한 후 최종 입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장시간 노동체제'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으로 ▲연장근로 관리단위 주 단위에서 월 단위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확대하려는 것은 초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인 만큼 월 단위 확대가 아닌 1일 단위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장근로, 휴일근로, 야간근로를 저축하는 것처럼 적립해 뒀다가 휴가로 사용하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 정책1본부장은 "근로자의 연장근로, 휴일근로, 야간근로에 대해선 사용자가 가산임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도입되면 사용자가 그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며 "결국 근로자는 제도 악용과 사용자 요구에 의해 비자발적인 휴가를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역시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 정책1본부장은 "주 최대 52시간제 도입 이후 이미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 확대했고, 신상품이나 신기술 연구개발과 관련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3개월 확대하는 등 유연근로제를 확대해 더 이상의 조치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직무ㆍ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연공형 임금체계가 고성장 시기에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데에는 적합한 임금체계로 작동했지만, 저성장 시기와 이직이 잦은 현재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한국노총은 연공형 임금체계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리에 부합하지 않고 기업별 격차 확대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일부 공감하지만, 연공형 임금체계 연령 상승에 따른 생활비 상승을 반영하고 임금 결정 시 사용자의 자의적 평가를 어느 정도 배제할 수 있는 등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가장 한국적 특성을 담은 임금체계"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사회구조는 그대로 둔 채 직무성과급제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결국 중장년층 노동자들이 임금을 깎겠다는 말"이라며 "임금체계 개편은 가계지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교육, 의료, 주거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충분한 시간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노동자 위한 법…입법 관철할 것"
 
최근 국회 쟁점 법안으로 떠오른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노란봉투법이라고 알려진 노조법 2ㆍ3조 개정운동은 손배ㆍ가압류 남용방지법, 노조법상 진짜 사용자 책임법이라고 봐야 한다"며 노란봉투법 제정운동에 힘을 실었다.
 
이어 "헌법 취지에 맞고 국제노동기준에 합당하게 기업이 손배청구권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법적 교섭의무과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노사관계의 기본원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노란봉투법 제정 방안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엔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연대가 유효한 상황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다수당인 민주당을 강하게 압박해 입법적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포착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2022년 하반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과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를 구축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에 관한 책임마저도 삭제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최근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사고, 충북도청 도로보수 공무직 노동자 사망사고, 강원도 원주 폐기물장 끼임사고, 안성 물류 건설현장 사망사고 등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며 "이번 사고들은 공통적으로 기초적인 안전조치 미흡과 안전에 필요한 적정한 인력과 조직, 예산 등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아서 발생한 인재"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발생한 평택 SPL 제빵공장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시의적절해 보이나 정작 정부 출범 이후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노동시간 유연화 시도와 중대재해처벌법에 소관 부처가 아닌 기재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연구용역을 진행한 월권행위, 그리고 철학 없는 자율안전보건을 내세우는 점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경사노위, 논란 계속되면 '탈퇴' 결단"
 
마지막으로,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를 뜨겁게 달군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노사 문제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중재 역할을 해야 할 경사노위 위원장이 편향적인 입장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김문수 위원장은 지난 12일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과거 노조 혐오 발언과 정치 편향적인 발언으로 야당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한국노총은 "최근 김문수 신임 경사노위 위원장의 행태는 시대착오적"이라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 가운데서 대화를 이끌어내고 중재하는 역할은 방기하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은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이러한 논란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경사노위에 불참할 수 있다는 강수도 내보였다. 김 위원장은 "여러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탈퇴는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지만, 노동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 계속되면 탈퇴를 결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실제로 저런 망언을 하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하느냐는 내부 압박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으나, 대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를 이끄는 수장의 말 한마디는 대화 중단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 사회적 대화 의제 발굴을 촉구하며 "주거, 교육, 돌봄 등 영역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등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나아가 근로시간면제 한도 논의 등 마무리 짓지 못한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정부를 향해서는 "경사노위 위원장이 앞으로 또다시 분란을 일으킨다면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위원장을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경사노위를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오는 11월 5일 이 같은 요구사항을 담아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대규모 집회를 하지 못했던 한국노총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건 약 3년 만이다. 한국노총은 대국회ㆍ대정부 협상에 집중하되 투쟁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현장의 이해와 요구를 담은 각급 조직의 과제를 관철하기 위해 조직적 필요가 있는 대국회ㆍ대정부 협상에 집중하면서도 조직적 역량을 모아 투쟁을 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