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클립아트코리아

다음 달 공개될 근로시간제 개편안의 윤곽이 나왔다. 현행 주52시간제 체제를 유지하되 근로시간제 선택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주 단위에서 월ㆍ분기ㆍ반기ㆍ연 단위까지도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그 대신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기 위해 11시간 연속 휴식을 강제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 중이다.

또 연장근로를 휴가로 활용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휴가가 근로자의 휴식과 자기 개발 등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휴가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했다.
 
연구회는 노동시장 개혁 과제를 발굴하고 검토하기 위해 출범한 논의기구다. 지난 7월 발족한 이후 근로시간제와 임금체계 개편 방안, 추가 구조개혁 과제를 논의 중이다.
 
이날 전문가 간담회는 연구회가 최종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진행됐다. 연구회 간사인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그간 논의한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발표했고 뒤이어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주52시간제에 자율성 더해야"...근로시간제 개편 취지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연장근로는 1주 단위로 계산된다. 한 주에 가능한 연장근로까지 포함하면 주 최대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이는 정해진 시간에 특정 장소로 출근해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전통적 노동형태에 적합한 체제다. 다양한 일하는 방식이 등장한 현재 산업환경에 들어맞는 체제라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현재 산업환경에서 성과는 노동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래 일한다고 해서 좋은 성과가 나오지도,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오래 일해야 하지도 않다.
 
근로시간과 성과는 분리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국 연간 근로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5위다. OECD 회원국의 근로시간 평균은 1716시간으로 약 200시간이 더 길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보다 노동시장이 긴 국가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뿐이다.
 
근로시간에 대한 현장의 의견은 어땠을까. 연구회는 9월 23일부터 10월 6일까지 전국 19~70세 근로자 3026명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재 일하는 시간이 적합하다는 응답이 38.1%, 공부, 건강 등 이유로 덜 일하고 싶다는 응답이 38.9%가 나왔다. 소득이나 커리어를 위해 더 일하고 싶은 경우는 23.1%였다.
 
이는 근로시간을 획일적으로 규율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회는 이 결과를 토대로 근로자 개인이 각자의 선호에 따라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연구회가 제시하는 방향은 이렇다. 우선 주52시간제 내에서 근로자와 사업장의 근로시간 선택 자율성을 확대해 효율성을 높인다. 휴가 활용도를 높여 노동력이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근로시간제가 법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공짜노동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독을 강화한다.
 
연장근로시간 단위, '월' 이상으로...근로자 동의는?
 
주52시간제 내에서 근로시간 선택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세분화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현행 제도에서 근로시간 관리 단위는 1주지만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월 단위만 도입하는 방안, 월ㆍ분기ㆍ반기 단위를 모두 도입하는 방안, 여기에 더해 연 단위까지 도입하는 방안 등 다양한 안이 검토되고 있다.
 
연장근로 단위가 길어질수록 장시간 근로가 연속될 수 있는 만큼 건강 보호 조치도 함께 도입된다. 연장근로를 하는 경우 11시간 연속으로 휴식하는 것을 강제하는 방안이 유력한 안이다. 야간노동의 경우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등 근로자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별도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단위기간을 연장해 11시간 연속휴식제와 함께 연장근로를 할 경우 주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해진다. 연구회 좌장을 맡은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늘리는 경우 산술적으로는 주당 69시간까지 가능할 것으로 계산되지만 이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며 "여러 가지 별도 건강 보호 조치를 고민하고 있고 어떤 단위기간 안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보호 조치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회는 근로자가 근로일과 출퇴근 시간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다만 연장근로 단위기간 변경 등은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권순원 교수는 "간담회에서도 연장근로 동의 주체에 대한 의견이 제안됐고 연구회 차원에서도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근로조건 변경과 관련해서는 근로자의 동의 절차가 불가피해 어떤 단위에서 동의가 필요한지는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휴가 패러다임 바꾼다
 
연구회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도 논의하고 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를 하는 경우 근로자의 선택에 따라 임금 보상이 아닌 휴가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제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연장근로를 휴가로 사용하는 경우 수당보다 높은 할증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장근로를 하는 경우 수당에 50%를 가산하지만 이를 휴가로 사용하는 경우 1시간 연장근로를 2시간 휴가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 적립한 시간을 다양한 휴가로 사용하는 방법도 논의 중이다. 안식월처럼 장기 휴가로 활용하거나 시간 단위 연차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다. 휴가 사용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징검다리 연휴에 단체 휴가를 사용하는 방식도 제안됐다.
 
권혁 교수는 "휴가를 다양화하고 휴가를 사용하는 데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휴가가 임금 보전이나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기 개발을 위해, 명실상부 휴가답게 사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관점"이라고 덧붙였다.
 
권순원 교수는 "미래노동시장의 경쟁력은 근로자의 휴식에 있고 창의성에 기반한 근로자의 성과도 충분한 휴식에서 나올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휴가 사용 패러다임 전화를 지향점으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투명한 근로시간 관리 전제돼야...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도
 
연구회는 근로시간 선택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ㆍ관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장ㆍ휴일ㆍ야간근로의 경우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공짜노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권순원 교수는 "지금도 임금대장에 근로시간을 명시하게 돼 있지만 제도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근로시간 개념과 작성 방법에 대한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할지는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시간제 적용을 제외하는 일명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도 검토 중이다.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는 근로시간의 양과 성과의 연관성이 낮고 근로시간 재령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어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다만 근로시간제 적용 제외 기준과 업종에 대한 윤곽은 나오지 않았다.
 
"기업 입장만 대변, 노동 개악 우려"...반발하는 노동계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의 근로시간제 개편안이 공개되자 노동계는 반발했다. 같은 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기업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간담회"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겠다면서 이와 정반대의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일 뿐"이라며 "'11시간 연속 휴식권 강제'나 '휴가사용 확대'는 휴식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연차휴가도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절대 보완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연구회의 기업 편향적인 연구결과 발표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면서 유감을 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발표된 개편안은 그간 사용자 측이 주장하고 요구했던 것과 다르지 않고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다르지 않다"며 "노동시간 선택권에 있어서의 '노사 자율'을 이야기하지만 노동조합이나 당사자의 참여가 구조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 등을 감안하면 허울뿐인 자율과 합의의 외피를 쓰고 진행될 우려가 매우 높다"고 꼬집었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은 사용자 측의 요구에 전문가의 연구와 의견, 형식적인 사회적 합의의 틀을 거쳐 추진될 것이며 이번 전문가 간담회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가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연구회는 임금체계 개편과 추가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전문가 간담회를 각각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노사 이해관계자들과 토론회를 진행한 후 12월 13일에 최종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