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노동법률)

산별교섭도, 노정 대화도 앞장서고 있는 노조를 꼽으면 단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기업별교섭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일찌감치 산별노조 체계를 갖춰 산별교섭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간호인력 처우 개선과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9.2 노정합의를 끌어냈다. 산별노조가 정부와 대화를 통해 진전된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런 보건의료노조가 노동개악 저지와 9.2 노정합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7월 총파업에 나선다. 어렵게 타결한 9.2 노정합의 이행이 부진하자 이번에는 일손을 놓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현장에 불을 붙인 까닭에 사상 최대 규모 총파업이 조직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을 만나 '대화 잘하는' 노조가 투쟁에 앞장서게 된 사정을 들었다.

Q 간호법에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됐다.

60년 동안 이어진 의사 중심 보건의료체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점이 유감스럽다. 그리고 의사가 반대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대한민국이 의사 공화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대통령과 복지부가 기득권 세력 편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컸다. 코로나19 시기에 헌신하고 희생한 간호사들에 대한 모독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장 조합원들이 오랫동안 간호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고 기대도 많이 했던 만큼 분노가 크다. 여당 의원들도 간호법 발의에 참여하고 제정 약속도 했던 상황이었다. 앞으로 다시 제정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절망적인 부분도 있다.

Q 그러나 일각에선 간호법이 직역 갈등을 유발하고 보건의료생태를 해친다면서 논란이 많다.

간호법은 세 가지 의미가 있는 법이다. 우선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회적 돌봄 요구와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사회적 돌봄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 지나친 의사직역 중심인 보건의료체계에서 벗어나 각 직역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수평적인 협업 체계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보건의료노조에는 50개 보건의료직종이 있다. 이들을 대표하는 위원장으로서 단언컨대 간호법에는 직역 간 갈등을 초래하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의료노조는 간호법을 지지한 것이다. 간호사 단독 개원, 직역 침범, 간호조무사 학력 차별 등 논란은 명확하게 가짜 뉴스이고 간호법 반대를 위한 정치적 프레임이다.

Q 그럼에도 간호법으로 직역 간 갈등이 거세지고 있다. 이야기한 것처럼 보건의료노조에 50개 직종이 있는 만큼 직역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이 우려스럽지 않나.

직역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간호법이 아니라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최고 책임자인 의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보건의료 인력에게 다른 직종의 업무를 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직역 간 갈등의 책임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무능한 보건복지부에 있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은 제쳐 두고 간호법이 직역 갈등의 원인인 양 호도하는 것은 큰 문제다.

Q 정부는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대신 보건의료인력 처우 개선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지난달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제대로 이행하겠다는 것인데, 정부 대책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정부의 종합대책은 간호사들의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문제들을 담고 있고 내용도 획기적이다. 방향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환영한다. 

특히 보건의료노조가 요구하던 간호사 1인당 환자 5인 기준 설정(간호등급 차등제)이 담겼다. 1:5 기준이 정부 대책에서 언급된 것은 처음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하려면 그만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인력을 늘려야 한다. 환자는 간병 문제를 해결하고 보건의료인력 노동 조건도 개선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교대제 개선 사업을 전면 확대하겠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3교대 근무는 노동 조건을 저하하고 간호사 사직률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3교대제를 개선하는 것은 노동 조건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신규 간호사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 전담 간호사 제도를 확대하는 등 교육 체계를 만들겠다는 대책도 담겨있다.

그러나 정작 이런 대책을 시행할 시기나 예산 등 구체적인 사항은 밝히지 않고 있어 실제 실행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방향성만 제시하고 선언할 게 아니라 실제로 이행돼야 한다.

Q 정부 대책에는 9.2 노정합의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 다수 있다. 9.2 노정합의 주요 내용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기존 합의를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9.2 노정합의를 체결한 지 2년이 다 돼가고 있지만 합의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새롭고 획기적인 내용인 양 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9.2 노정합의에서는 간호등급 차등제 개선을 아주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2022년 말까지 방안을 마련해서 2023년도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해서 시행한다고 합의했음에도 제대로 논의가 안 됐다. 그렇게 2023년이 왔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도 2022년까지 로드맵을 만들어서 2026년까지 전면적으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로드맵 얘기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노조는 합의 당시 이행 점검회의를 제안했다. 10차례 정도 회의가 진행됐고 교대제 개선 부분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합의의 많은 부분이 이행되지 않았고 정권 교체로 이행이 더 더뎌졌다. 보건의료노조가 7월 총파업을 결의하게 된 이유다.

Q 인력 관련 요구 이행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7월 총파업을 한다고 하니 복지부가 인력문제에 관해서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인력 관련 요구는 크게 네 가지다. ▲간호등급 차등제 1:5 비율로 개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전면 확대 ▲업무 범위 명확화 ▲다른 보건의료직종에도 적정 인력 기준 마련이다. 

이 중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과 간호등급 차등제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 직종별 인력 기준과 관련해서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6개 직종에 대해 우선 적정 인력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고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다. 업무 범위 명확화도 의사가 해야 할 업무와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는 업무를 구분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Q 9.2 노정합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의료 공공성 확충이다. 그러나 인력 문제와는 다르게 현 정부에서 잘 논의되지 못하는 듯 하다.

인력 문제는 속도가 나고 있는 반면 공공의료 확충에 관해서는 진전이 없어 너무 안타깝다. 코로나19 시기에 공공병원의 중요성이 드러났고 광주, 울산, 대구, 인천, 제천 등에서 공공병원 설립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9.2 노정합의에서도 이 지역들에 공공병원을 설립한다는 합의까지 했지만 진척이 없다. 얼마 전 울산 공공병원 설립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경제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광주도 비슷한 상황이다.

또한 9.2 노정합의에서는 코로나19 대응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앙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설립하고,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급으로 800병상 이상을 확충할 것을 합의했었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500병상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의사들도 화나게 만든 사건이다. 정부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새 정부 출범 후 공공병원은 언급조차 안 되고 있다. 공공의료는 공익적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복지부에서는 적자 지원 방안 연구까지 했지만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다. 공공의료는 뒷전으로 밀리고 의료민영화 관련 사항들만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어 문제다.

Q 5월 3일에 산별중앙교섭이 시작됐다. 물가 상승, 경제 불안, 노정 관계 경색, 간호법 거부권 행사 등 대내외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올해 교섭을 어떻게 전망하나.

보건의료 노사관계는 갈등보다는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협력하려는 관계다. 그러나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대시키다 보니 사용자들도 정부 눈치를 보거나 시간을 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조를 향한 부정적인 정책으로 노사관계까지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임금인상 요구안으로 10.73%를 제안했다. 올해 물가 인상까지 더해져 조합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굉장히 높은 상황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 4만8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임금인상 요구가 매우 높게 나타나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의사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교섭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의한 첫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 임금이 간호사보다 5배, 간호조무사보다 8.2배 높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하면 의사 임금이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의사 인력 부족으로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있어 올해 쟁점이 될 것 같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임금인상 외에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직종별 적정 인력 기준 준수 ▲공공병원 위탁 운영 중단 ▲의료민영화 중단 ▲주52시간제 준수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Q 현재 산별중앙교섭에는 지방의료원, 공공병원, 민간 중소병원 정도만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하는 사용자 단체를 확대하는 데에도 고민이 있을 것 같다.

보건의료노조는 1998년에 산별노조가 됐고 그 후로 계속 산별교섭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04년 주 5일제 논의를 계기로 전체 사용자가 참여하는 산별교섭을 진행했지만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노동 정책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면서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이 불참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민간중소병원, 지방의료원, 특수목적 공공병원들만 참여한 상태로 산별중앙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사용자단체 참여 확대를 요구하면서 사립대병원 의사 정책 워크숍, 간담회 등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국립대병원을 상대로 별도 교섭을 추진했다. 물론 안 되긴 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Q 산별교섭 확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산별교섭을 법으로 제도화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4월 24일부터 한 달간 '초기업·산별교섭 활성화 입법청원'을 진행했다.

산별교섭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해답이다. 보건의료노조는 2007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정규직 임금 인상을 양보하는 합의를 한 적 있다. 기간제 사용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한다는 기간제법 시행을 앞두고 혼란이 일던 상황이었다. 비정규직 100만 대란이 발생하고 기간제는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될 것이라는 등 우려가 나왔고 사용자는 정규직화에 따른 재정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에서 임금인상률을 낮추는 대신 그 재원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사용하는 합의를 체결했다. 산별교섭에서만 가능한 합의다.

기업별교섭은 임금을 더 요구하고, 정규직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별교섭에서는 전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내용들을 가지고 교섭할 수 있기 때문에 불평등과 양극화, 이중 구조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입법 청원 운동은 조직 노동자가 미조직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또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현재가 미래에 손을 내미는 진정한 사회 연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초기업·산별교섭 활성화 입법청원은 5월 23일 5만 명을 달성했다. 30일 안에 5만 명 이상 동의를 얻은 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Q 7월 총파업을 조직하고 있다.

7월 총파업 목표는 노동 개악 저지와 9.2 노정합의 이행이다. 두 가지 목표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우선 정부의 노동 개혁은 명확하게 노동 개악이다. 정부는 노동조합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함께 가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 '회계 부정 집단', '부패 조직'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주69시간제나 부분 근로자 대표제, 노조 파업권을 제약할 수 있는 제도적인 부분들은 노동조합 입장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9.2 노정합의 중 보건의료 인력부분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이행 시점이 명확하지 않아 지지부진해질 수도 있다. 9.2 노정합의 이행 시점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할 생각이다. 공공의료 문제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미 보건의료노조 산하 11개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조합원 교육을 시행했다. 현장에는 9.2 노정합의를 절대 유실되게 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또 노동 개악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간호법 거부에 대한 분노가 굉장히 높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의 66.5%가 간호사다. 이런 불만들이 7월 총파업 투쟁을 통해 표출될 것이라 본다. 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Q 올해는 산별노조 전환 25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보건의료노조는 '제2산별노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이 4만5000명에서 8만5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그간 활동을 평가하면서 미래 발전 전략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전 전략 연구는 조직 강화, 조직 확대, 초기업 교섭 세 가지 측면에서 진행했다. 

특히 작년 말에는 2박 3일 동안 정책대회를 열었다. 약 35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정책 대회를 개최한 것은 아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중 처음일 것이다. 중앙 지도부가 아닌 현장 간부들도 연구 의제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보건의료노조는 우선 초기업·산별교섭 활성화 입법청원을 반드시 성사시켜 산별교섭을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추진할 계기를 만들어 보려 한다. 또한 산별노조로서 모든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위해 교섭을 계속 추진하자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올해는 이런 것들을 만들어가는 첫해로 만들고자 한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