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전제품 방문점검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쟁취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 직장인에게 가장 필요한 대선 공약으로 꼽혔다. 윤석열 정부는 근로기준법 '단계적 확대' 적용을 추진해 왔지만,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사실상 다음 정부로 공이 넘어간 상황에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 이번 대선 의제로 부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직장갑질119 "근기법 전면 적용, 대선 1등 공약"

직장갑질119는 전날 노무사, 변호사, 활동가 등 직장갑질119 스태프 116명에게 '2025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공약 Best 10' 설문조사(복수응답)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9%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필요한 공약으로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모든 근로자에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뽑아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그 외의 답변으로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 재추진(50.9%) ▲상시지속 업무 비정규직 사용 금지(49.1%) ▲근로자성 판단 시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ABC 테스트 도입(38.8%) ▲포괄임금계약 전면 금지(33.6%) 등이 나왔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는 근로자에 대한 해고 제한 조항 적용'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23.3%에 달했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차휴가, 연장ㆍ야간ㆍ휴일 가산수당 등 근로기준법 주요 규정을 적용받지 못한다. 특히, 부당해고가 발생해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윤 정부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단계적 확대 적용을 추진해 왔다. 이때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기준법 '단계적 확대' 적용은 앞서 직장갑질119가 언급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차이가 있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에게 근로기준법 규정을 전부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영세 소상공인ㆍ자영업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어 노동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단계적 확대 적용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되 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정부와 여당의 꾸준한 반대에 부딪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에게 노동관계법 적용이 아니라, 지원을 하는 등 다른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진아 직장갑질119 공인노무사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법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근로자들을 더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법 밖으로 밀려나고, 단기계약직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형태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실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근기법 확대 적용, 이재명ㆍ김문수 답은?

대선 레이스에 올라탄 후보들 중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후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는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지난 2월 이 후보가 양대 노총을 연달아 만났을 당시 양대 노총은 이 후보에게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 후보는 "추진하되, 한국에는 자영업자 수가 많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3월 민주당이 발표한 20대 민생의제엔 ▲주4일제 ▲비정규직 차별 개선 ▲단체협약 효력 확대 ▲고용ㆍ산재 보험 개편 등 노동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한 의제가 담겼지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우 고용부 장관 당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취임 시 1순위로 추진할 과제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꼽기도 했다.

다만, "근로기준법을 일시에 전면 적용할 경우 우리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에게 큰 부담을 가중시키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폐업하거나 고용이 줄어드는 등 사회 경제 일자리 전반에 미치는 충격도 상당할 것"이라며 전면 적용이 아닌 단계적 확대 적용을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3월엔 기자들과 만나 "현재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확대 적용을 위해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며 "업종ㆍ지역별로 5인 미만 사업장을 유형화해 근로기준법으로 적용으로 인한 임금 상승 효과 및 영향 등을 예측해 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여당과 야당 모두 노동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추진 중이다. 여당은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안(노동약자법)'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노동약자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는 영세 사업장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 노동약자 정의 ▲중앙노동위원회에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공제회 설립해 소액 대부, 복지 증진 등 지원 ▲표준계약서 마련과 사용 권장 등의 내용을 통해 노동약자를 지원 및 보호 등을 골자로 한다.

야당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추진 중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고용상의 지위나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을 모두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