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즉각 파면! 내란세력 청산! 사회대개혁 쟁취!' 총파업 총력투쟁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윤 정부의 노동개혁은 개점휴업 상태를 맞았다. 사실상 노동개혁이 막을 내린 상황에서 노사 각각에 그간의 노동개혁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비슷한 듯 달랐다. 비슷한 점은 노사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노동정책이 드물다(없다)는 점이고, 다른 점은 그나마 경영계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노사 법치주의 정책을 노동계가 반(反) 노조 정책이라고 평가한 점이다.
 
尹 노동개혁, 무엇을 남겼나
 
윤 정부는 출범과 함께 3대 개혁(연금ㆍ교육ㆍ노동) 중 하나로 노동개혁을 선언했다. 대선 후보 시절 공약에서 '노동'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탓에 윤 정부가 노동개혁 카드를 꺼낸 것은 의외라는 평가가 따랐다.
 
먼저, 노동개혁 우선 추진 과제로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직무ㆍ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두 가지가 제시됐으며, 이후 ▲노동약자 보호 ▲노사 법치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동법원 설립 등이 추가 과제로 따라왔다.
 
윤 정부는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목표로 현행 주 단위로 운영되는 연장근로를 월ㆍ분기ㆍ반기ㆍ연 단위로 확대하는 개편안을 발표했으나, '주69시간'이라는 역풍에 부딪혀 발표 보름 만에 개편안을 철회했다. 결국 현행 주52시간제 틀을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연장근로시간 단위기간을 확대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그러나 윤 정부는 집권 내내 '여소야대'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고 추진하고자 하는 입법안들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물론,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직접 지시했던 노동약자보호법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동법원 설치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다뤄지지도 못했다.
 
윤 정부에서 유일하게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노동개혁은 노사 법치주의 확립이다. 윤 정부는 "노조는 노조답고 사업주는 사업주다운 제대로 된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노사의 불법행위를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임금체불, 포괄임금 오남용, 부당노동행위, 직장 내 괴롭힘, 불공정 채용 등 5대 불법ㆍ부조리를 뿌리 뽑겠다고 선언하고, 노동계를 향해선 노조 회계 공시 제도 시행, 근로시간면제제도 기획 근로감독에 나섰다.
 
노동계는 윤 정부의 노동개혁 전반을 '노동개악'이라고 비판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시도엔 강하게 반발했으며, 특히 노사 법치주의 정책에 대해선 "노조를 비리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정엽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윤 전 대통령의 노동 정책은 일종의 반노조 정책으로, 장시간 노동을 초래하는 사용자 친화적인 정책이었다"며 "정부가 노사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바람에 사회적 대화나 노사 간의 제대로 된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정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실장도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사용자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 준 것에 불과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체계로의 개편"이라며 "대부분의 정권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파견직이나 기간제 근로자를 확대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이 같은 노동 정책은 노동계 입장에서는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노사 법치주의 외엔 뚜렷한 결과물을 남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하고자 했던 정부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사 법치주의는 현장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관행 등을 바로잡았다. 근로시간 면제제도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위법했던 부분들을 개선할 기회도 부여했다"며 "노사 법치주의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로시간 유연화나 임금체계 전환 등은 미룰 수 없는 과제였고, 실제로 정부는 이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였다"며 "그러나 여소야대 정국이었고, 노동계와 국민에 대한 설득이 부족했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완화할 수 있는 법 제도 개선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노사 법치주의로 인해 중소 건설 현장의 근로손실일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정책이다"라며 "그러나 근로시간 유연화 등은 현실화됐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실현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새 정부에 바란다…노 "노란봉투법", 사 "근로시간 유연화"

새롭게 들어설 정부에서도 노동개혁은 계속된다. 노사 모두 평가를 마쳤다면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노사에게 이후 새 정부가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노동개혁 과제를 물었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 제정을 첫 번째로 꼽았다. 또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와 같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본부장은 "윤 전 대통령은 노사관계에 부당한 개입이 반복돼 왔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노사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며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노동자들의 교섭할 권리를 막은 것이 시발점이다. 노란봉투법 입법 후 노동권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고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실장도 "노란봉투법 제정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 실장은 "근로기준법 바깥에 있는 근로자들을 근로기준법에 포용하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며 "비정규직 확산을 막아야 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프리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기업 교섭뿐만 아니라 산별교섭 등도 활성화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하며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과 임금 등에 있어 '유연성'을 강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본부장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법 제도의 유연성"이라며 "지금처럼 일률적인 근로시간과 호봉제, 정년 연장 추진 등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며, 기업 현장에 필요한 것은 근로시간 및 임금 등에 대한 유연성"이라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도 "윤 전 대통령이 미처 해내지 못한 근로시간 유연화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중소 건설 현장을 생각해 볼 때 중대재해처벌법의 형사처벌 수준을 완화하는 법안 또한 필요하다"며 "정년 연장의 경우 새 정부에선 노사 자율에 의해 선택권을 부여하는 '재고용'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대화, 여전히 중요"
 
전문가들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새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시행하든 노동개혁에 노ㆍ사ㆍ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봤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아직도 이념 대립의 바탕에 있어 승부를 겨루는 형태이다 보니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진영을 넘어서 사회적대화기구가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윤 정부는 노동계와 제대로 대화하지 않고 친기업적인 노동정책만을 고수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노동개혁이 성공하기 위해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는 필수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주4일제, 정년연장,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차기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뿐 아니라 민주노총까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를 만드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정현ㆍ이재헌ㆍ이동희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