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설치된 대기오염물질 측정수치 안내 전광판에 온도가 37도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폭염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규칙에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제동을 걸었다. 규개위는 폭염 시 2시간 이상 일하면 20분 이상 휴식시간을 부여한다는 조항이 중소 사업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권고했다.

규개위 권고에 노동계는 "폭염 시 필요한 기본적인 조치도 중소 사업장이 이행할 수 없다는 건 무책임한 주장"이라며 규개위를 강하게 규탄한 반면, 경영계는 "중소기업의 현장을 잘 이해한 조치"라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9일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2일 고용부는 내부 검토를 거쳐 산업안전보건법 규칙 개정안을 재입법 예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고용부는 폭염 시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보건 조치 사항을 정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입법예고했다.

해당 입법예고안에는 체감온도 31도 이상 작업장소에서의 장시간 작업을 '폭염작업'으로 규정하고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환경에서 2시간 이상 작업 시 20분 이상 휴식 시간 부여 ▲작업 성질상 휴식 부여 곤란한 경우 이동식 에어컨, 산업용 선풍기 등 냉방 통풍 장치 설치 ▲폭염작업 중인 근로자 온열질환 발생 의심 시 지체 없이 신고 조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는 지난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규개위는 지난 5월 23일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환경에서 2시간 이상 작업 시 20분 이상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조항을 반려했다. 해당 조항이 중소 사업장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획일적인 규제라는 이유에서였다.

규개위는 "해당 조항의 획일적 규제가 바람직한지, 근로자의 건강 장해 예방에 실효성이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또한 중소ㆍ영세 사업장에 부담이 된다"며 재검토를 권고했다. 이는 지난 4월 해당 조항에 대해 규개위 1차 심사에서도 재검토 의견을 받았고, 재심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에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규칙을 개정해 다시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재입법으로 인한 공백 기간엔 폭염 안전 5대 기본수칙을 정하고 자율 개선 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자율 개선 기간은 6월 2일부터 오는 20일까지다.

폭염 안전 5대 기본수칙엔 문제가 된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환경에서 2시간 이상 작업 시 20분 이상 휴식'도 포함됐다. 그 외에도 ▲충분한 물 제공 ▲실내ㆍ옥외 작업 시 에어컨 및 산업용 선풍기 등 설치 ▲온열질환자 또는 의심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즉시 119 신고 등의 수칙이 담겼다.

노동계 "폭염에 쓰러질 때까지 일하라는 거냐"

노동계는 그동안 가이드라인에 그쳤던 고용부의 폭염 대책이 입법을 앞두고 무산됐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폭염에 대한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외국에서는 폭넓게 다양한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국은 그동안 가이드라인에 그쳤다"며 "이제 겨우 입법으로 해결하나 했더니 또 다시 '자율 개선'에 그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비판했다.

최 실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주 기본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업종별, 규모별로 차등을 두지 않고 있으며, 폭염 상황에서 2시간 일할 때마다 20분 쉬겠다는 조항 또한 매우 기본적인 것"이라며 "중소ㆍ영세 사업장이 이 정도의 기본적인 조치도 이행할 수 없어 도입하지 않겠다는 건 면피성의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온열질환 산업재해로 승인된 건수는 총 145건으로 이중 사망 사고는 17건이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5인 미만 사업장이 32건, 5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이 29건, 3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 13건이었다. 즉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전체의 51%에 달하는 74건의 온열질환 산업재해가 승인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67건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했다. 발생 장소를 기준으로 보면 실외에서 발생한 사고가 96건으로 실내(26건)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전재희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건설업계의 경우 옥외작업이 많을 뿐만 아니라 안전모, 안전화 등 보호구를 착용해야 하고 주로 사용하는 자재가 쇠로 돼 있어 폭염에 더욱 취약한 상황"이라며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해 주는 것이 온열질환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인데 규개위가 이에 제동을 건 것은 건설 근로자들이 더워 죽어도 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 실장은 "또한 소규모 현장일수록 적절한 냉난방 시설이 없고, 물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 현장의 작업자들은 장시간 중노동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데 규개위가 '중소ㆍ영세 업장의 시행 어려움'을 이유로 개정안에 철회를 권고한 것은 규개위가 사용자만을 고려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경영계 "중소기업 현장 잘 반영한 조치" 환영

경영계는 규개위의 제동이 중소기업 현장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봤다. 작업 공정 중 강제로 휴식을 취할 경우 생산성이 떨어지는 작업이 존재하고, 중소기업의 경우 냉난방 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작업 중에는 폭염이라고 해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할 경우 생산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냉난방 시설 설치를 강요하는 것 또한 중소기업에서는 투자 여력이 부족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규개위의 제동은 이러한 중소기업의 현실을 잘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경영계가 계속 요구해 오던 것들을 참작한 결과"라며 환영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폭염 기간에 휴게시간을 주자는 부분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획일적으로 입법하는 것은 여태 없던 사례"라며 "규개위가 고민 끝에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고 봤다.

임 본부장은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생산 공정이 다르고, 연속 업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개정안을 기존대로 시행하게 되면 현장에서 불편함이 발생할 것"이라며 "휴게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을 전제로 하되, 각 사업장의 공정의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