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괴롭힘학회가 서울 마포구 서강대 정하상관에서 '2025년 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재헌 기자 jh59@)

한국괴롭힘학회가 춘계 학술대회를 열고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괴롭힘합회는 사후 조치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신고 오남용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괴롭힘학회는 1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정하상관에서 '2025년 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사후 조치에 중점을 두고 있어 예방 중심으로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제도화하지 못해 고용노동청 신고, 법원 소송 등 사후 대응 중심의 구조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사용자의 대응이 절차 중심, 법적 회피적으로 변질되며 분쟁이 장기화되고 조직 전체에 불신을 남기고 있다"며 "예방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구체적으로 ▲행동 지침과 가이드라인 제시 ▲괴롭힘 조기 감지 시스템 구축 ▲고충 처리에 집중한 비공식적 해결 모색 ▲존중 리더쉽과 협업문화 조성을 제시했다.

문 대표는 세계은행의 AHC(Anti Harassment Coordinator) 제도를 소개했다. 세계은행은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등 조직 행동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피해자가 공식적 절차를 사용하기 전에 비공식적 차원에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AHC 제도를 시행했다.

세계은행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건수가 2017년 71건, 2018년 114건으로 증가하다가 AHC 제도 시행 후 2019년 113건, 2020년 80건, 2021년, 20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조직문화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도보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직장 내 갈등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긍정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 교수는 "조직 변화의 성공률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며 "경영진의 의지 표명과 적극적 참여, 실무진의 경험 반영, 지속성과 일관성 있는 조직 개발이 이루어져야 긍정 조직 문화 구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나정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도 "조직 내 극단적 갈등을 컨트롤하지 못 하면 조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갈등 관리 담당자들에게 대화 기법을 교육하고 비공식적인 피드백 창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소규모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제도를 두기 어려워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시 100인 미만 사업장은 0.6%만이 사내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제도가 없다고 응답했지만 10인 미만 사업장은 27.9%, 5인 미만 사업장은 41.8%로 높았다.

김성호 노무법인 해담 대표공인노무사는 "사용자에게 위임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운영이 사업장 규모에 따라 격차가 발생한다는 점은 현행법의 한계를 보여준다"며 "제도 안착을 위한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방과 함께 신고 오남용, 허위신고 등 직장 내 괴롭힘의 부작용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제도는 괴롭힘 정의상 지속성ㆍ반복성을 요구하지 않고, 신고 오남용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어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현행 제도의 구조적 문제"라고 했다.

조 변호사는 악의적 신고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기업은 악의적 신고를 하는 직원들을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최대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정도가 심하면 해고, 권고사직 등을 통해 기업을 떠나도록 하는 것도 염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악의가 없는 부적절한 신고에 대해서는 적정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악의적 신고와 달리 부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부적절한 신고는 대개 일회성으로 그치고,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신고인이 승복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적절한 신고는 강경 대응보다 의식 개선 캠페인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