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022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건설노조) 건설기계지부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렸다. (사진=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로 조직된 노조에 시정명령을 내려 이로 인한 법적 다툼이 발생한 가운데, 노동계는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일괄적 적용 제외는 시장 질서에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공정위와 노조 갈등…법원에서는 노조 측에 손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건설노조) 건설기계지부가 부산 공동주택 건설 현장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건설기계를 공사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며 레미콘 운송과 건설기계 운행을 중단했다는 혐의로 과징금 납부 명령을 했다.
 
지부는 공정위의 과징금 납부 명령에 반발하며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노조가 노동조합법상 노조인 동시에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라고 보면서 공정거래법이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부 조합원들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다"면서도 "지부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에도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도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근로조건에 관한 부분은 자유경쟁의 예외가 인정되나 거래조건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이 위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이 합리적 기준 없이 이루어졌다"며 "예측 가능성과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 처분으로 위법하다"고 했다.
 
공정위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법적 다툼도 대표적인 사건이다. 화물연대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주장하며 네 차례 파업에 나섰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기사의 과로와 저임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화물운송기사, 화물차주, 운수사업자,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안전운임위원회가 시멘트ㆍ컨테이너 운송 운임을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로 2020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공정위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공정거래법상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며 현장 조사를 시도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공정위의 현장 조사를 저지했고,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화물연대를 고발했다. 검찰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화물연대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화물연대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화물연대가 일부 사용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서도 노동시장 전속성이 높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또한 법원은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파업이 적법하다고 판단해 공정위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노동계 "공정거래법에서 노조 제외"…개정안 발의
 
노동계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이용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종국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장은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을 통해 검찰이 압수수색 하듯이 노조를 강압적으로 조사한다"며 "공정위를 앞세워 노조를 탄압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강동헌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법규부장도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을 이용해 노조를 탄압해 왔다"며 "공정위의 노조 탄압을 멈추기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이 필요하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가 아니고 노조가 사업자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공정거래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지욱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공정위가 더 이상 공정거래법을 이용해 노조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며 "국회는 반드시 오는 정기국회에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2대 국회에는 노동계의 요구 사항이 반영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달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 단체에서 노조를 제외하고, 사업자에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와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를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3당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정거래법 개정 국회 토론회'고 개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번에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 특권을 주자는 내용의 발의안이 아니다"라며 "헌법이 부여한 노동3권을 당연히 누리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신 의원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화물연대 등 노동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나온 결과물"이라며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현주 노동자권리연구소 변호사는 "헌법상 노동3권의 보호 범위 내에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 않고 노동조합법이 특별법으로 배타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며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는 취지, 노동조합법의 목적,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에 따라 노무제공자와 노조를 사업자와 사업자단체에서 제외하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발의된 개정안의 입법 취지와 영향, 국제 표준 등에 대해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강압적 단체행동ㆍ시장 질서 교란' 우려
 
반면 경영계는 개정안 발의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영계는 공정거래법 적용 범위에서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일괄적으로 제외할 경우 강압적 단체행동으로 인한 시장질서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공정거래법에서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일괄적으로 제외하면 이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와 강압적 단체행동이 면책돼 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노조가 운송 거부 등 시장 경쟁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기업의 정상적인 사업 운영과 시장의 자유로운 계약 질서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공정거래법과 노동조합법은 입법 목적과 취지가 달라 근로조건이 아닌 사항에 대해서는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 본부장은 "근로조건이 아닌 거래조건, 조합원 채용 강요, 공사 현장 출입구 봉쇄 등에 대해서는 노조도 공정거래법강 규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며 "노조의 단체행동이 자유로운 협상의 범위를 넘어 거래상대방의 선택권을 침해하거나 제3자에 대한 불이익을 야기하는 경우 공정거래법이 우선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일 법률사무소 해방 대표변호사도 "개정안이 노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일률적으로 이들을 공정거래법 적용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부 단체가 노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가면을 쓰고 자유로운 가격 담합이나 공급 제한 행위를 정당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일괄적인 제외가 아닌 행정해석 가이드라인과 전담 심의 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2년 '1인 자영업자 가이드라인'을 통해 용역 계약을 통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무제공자 조직의 단체교섭과 협약에 대해서는 경쟁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정 변호사는 "계속해서 공정거래법과 노동조합법이 충돌한다면 이에 대한 행정해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거나 전담 심의 기구를 두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부작용이 예상되는 법 개정만을 고집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노조ㆍ특고는 제외?…학계도 '갑론을박'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공정거래법 적용 범위에서 일괄적으로 제외하는 것에 대해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영훈 부경대 법학과 교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조직된 노조의 집단행위를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제재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된다"며 "이는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위축시켜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법상 사업자에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배제되도록 공정거래법이 해석되고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과 노동조합법의 충돌 문제는 해석론이 아닌 입법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공정거래법을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 적용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석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향은 아니다"라며 "공정위의 현장 조사 자체가 노조의 권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상황에서 권리 침해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노조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일괄적으로 제외하는 것이 오히려 이들의 권리를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최근 노조는 사용자와 교섭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사회활동에 기여하며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노조가 상법상 상행위를 하거나 공정한 시장 참여자로서 행위하는 경우도 있어 공정거래법상 사업자 단체에서 노조를 일률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오히려 노조의 역할을 너무 좁게 제한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노조가 근로자를 대표하는 지위와 사업자의 지위를 동시에 가진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조가 어떤 지위에서 한 행위인지를 엄격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공정거래법 적용 여부에 대한 판단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간 학계에서 노동법과 경제법에 대한 학제 간 연구가 부족해 화물연대 사건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법률을 통해 "노동법과 경제법은 전통적으로 독립된 법 영역이기는 하지만 근로자인지 사업자인지 구분이 모호한 프리랜서 등 일하는 사람의 증가는 경제법과 노동법의 교착 상태를 만들었다"며 "노동법과 경제법의 학제 간 연구 부족으로 인한 학문적 미성숙이 화물연대 사건을 발생시킨 이유일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반세기 동안 다양한 논의가 전개됐고, '노조의 단체행동이 노동자 이외의 단체와 공모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반독점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연방대법원의 Hutcheson 판결이 있었다"며 "법 구조가 달라 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경제법 집행기관인 공정위가 노조 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헌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