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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관련 상담 요청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필자에게도 법적 조언이나 실무적 조언을 구하려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식으로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개인 피해자나 목격자들이다.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정신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이기 때문에 필자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동의할 경우 상담 내용을 연구에 활용하는 조건으로 무료 상담을 제공해 왔다. 필자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처리를 직접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진행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공공기관의 인사ㆍ노무 부서에서도 무료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작은 대체로 동일하다. "간단한 것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짧게 의견만 들어보고 싶습니다"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필자가 응답하면 바로 다음 질문으로 이어지고, 구체적인 컨설팅을 요구하는 수준에 이른다. 이를 모두 무료로 요구하는 것이다.

심지어 모 기업의 인사부서장은 필자에게 기업의 실태조사 컨설팅을 정식 의뢰할 것처럼 접근해 자료를 받아 간 후 연락을 끊었다. 이후 1년이 지나 아무렇지 않게 다시 전화를 걸어 무료 자문을 요청했다. 상대는 본인의 행동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고, 심지어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드려도 되죠?"라고 했다. 필자의 시간과 전문성을 무제한 공공재로 취급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보상 없이 활용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필자는 무료 상담 제공에 대해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게 됐다. 현재는 실제 피해자나 목격자이면서, 상담 내용을 연구 자료로 활용하는 데 동의한 경우에만 무료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그 외의 경우는 필자의 연구 목적에 부합되는 사람이 상담을 신청하고, 연구 목적 활용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무료 상담을 제공한다.

이처럼 제한적이나마 무료 상담이 가능한 이유는 필자가 연구직으로서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의 노무사나 변호사는 다르다. 그들은 상담과 사건 처리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전문성과 시간을 들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비용을 받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그들에게 무료 상담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례는 여전히 빈번하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가 단순한 '무상 상담 요청' 차원을 넘어, 전문가의 노동을 당연시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나는 열정페이 당하기 싫지만, 당신은 열정페이로 해 달라", "나는 내 시간과 노력을 공짜로 쓰기 싫지만, 당신의 전문성은 공짜여야 한다"는 식이다. 피해자라는 위치를 이유로 타인의 생업과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는 모순적인 태도다.

다음은 실제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1. '내 돈 받아내게' 무료로 도와달라는 요구
 
프리랜서 예술인 A는 한 기업 홍보팀으로부터 샘플 제작을 요청받아 시간과 정성을 들여 결과물을 제출했다. 그러나 기업 측은 단가 문제를 들어 최종 계약을 거부했고, 이후 A가 작업 비용을 요구하자 "누가 샘플에 돈을 주냐"며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분노한 A는 한 노무법인에 연락해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은 단순 문의로 시작됐지만, 이내 상황의 구체적인 경과 설명, 상대방의 대응 전략, 법적 청구 가능성, 증거 정리 방법 등으로 확장되며 약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상담이 길어지자 노무사가 유료 상담이 기본임을 알렸고, 이에 A는 "돈만 밝힌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노무사의 시간과 조언을 전혀 값진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비용 요구를 비윤리적인 태도로 몰아갔다. 전문 서비스에 대한 기본적 존중이 없는 태도였다.
 
2. 다수의 전문가에게 '나눠 듣는' 무료 상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한 B는 단 한 명의 전문가에게 전체 상담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는 10명이 넘는 노무사에게 각각 "간단한 질문이 있다"며 접근해, 질문을 끊어서 나눠 가며 조각 상담을 받았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노무사에게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며 상담을 이어가다가 더 이상은 무료 상담할 수 없다고 거절당하면 두 번째 노무사에게 연락해 다음 질문을 이어가는 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상당한 양의 법률 정보를 확보했고, 이를 지인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돈 한 푼 안 들였다"고 자부했다. 옆에서 듣던 지인이 "그건 좀 민폐 아니냐"고 지적하자, B는 오히려 화를 내며 자신은 정당한 피해자일 뿐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노동을 분할해 공짜로 활용한 그의 방식은 자신은 '손해 보지 않겠다'는 명분 아래 타인의 전문성을 착취한 행위였다.
 
3. 사건 자료 정리를 무료로 해 달라는 요구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C는 초기 상담비 일부만 지불한 뒤, 이후의 추가 비용 요구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단지 비용 거부에 있지 않았다. 그는 사건 정리를 스스로 하지 않았고, 노무사의 질문에 객관적 사실이 아닌 감정 호소로만 응답했다. 일시, 장소, 가해자의 구체적 행위 등을 요청하면 "그건 노무사가 알아서 정리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 식이었다.

상담은 당초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고, 노무사는 추가 정리 작업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에 따라 비용 안내를 하자, C는 "이미 돈 냈는데 왜 또 받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노무사에게 욕설까지 하며 상담을 종료했다. 상담이란 '대가 없는 친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라는 이유로 전문성에 대한 무한 이용권을 요구하려 한 것이다.
 
피해자라는 위치는 프리패스가 아니다. 이들의 요구가 문제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안 낸다'는 데 있지 않다. 타인의 시간과 노동,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하지만, 피해자라는 이유로 타인의 전문성을 착취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피해 사실 자체가 명백하고, 감정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상황일지라도, 자신이 요청하는 전문 서비스가 상대방의 생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법률, 노무, 상담 분야처럼 전문성과 시간 투입이 높은 서비스 부문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상식은 필수다. 전문가의 시간은 무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