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직장갑질119가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타파하자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했다. (사진=뉴시스)

문제 직원은 기업의 오랜 골칫거리다. 오랜 골칫거리인 만큼 이제는 그 대응에 익숙해져 수월할 법한데, 문제 직원의 유형과 양상은 늘 새롭고 다양하게 나타나 발목을 잡는다. 노동법률이 <문제직원연구소>를 통해 문제 직원과 문제 직원으로부터 파생되는 실무상 이슈를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고백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은 연애 감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고백을 해 상대방에게 심리적 불쾌함과 정신적인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희화화한 인터넷 밈(Meme)이다. 최근 이러한 고백공격을 직장 내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3년간 일방적 구애…법원 "직장 내 괴롭힘"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4부(이상덕 부장판사)는 7월 17일 A 운수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 운수회사에서 버스기사로 일한 B 씨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동료 여성 버스기사 C 씨에게 일방적으로 애정표현을 했다. C 씨는 B 씨의 선물과 식사 제안을 거절했고, 2020년 5월엔 거절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그럼에도 B 씨는 C 씨가 운행하는 버스에 탑승한 뒤 마지막 승객이 내리자 버스 앞쪽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일방적인 애정표현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C 씨는 B 씨를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으로 신고했다.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을 징계사유로 B 씨를 해고했다. 해고에 불복한 B 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징계사유로 직장 내 성희롱만 인정하고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하지 않았다. 중노위가 B 씨의 구제신청을 인용하자 회사는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직장 내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 둘 다 인정했다. 먼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 "초기 단계에서 이루어진 선물 제공, 연락 등은 애정표현의 정도가 낮고 직장동료의 일상적인 친밀감 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기는 하나, 그러한 행위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거절 또는 불편함의 표시가 있었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됐다"며 "이는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로서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인정됐다. 중노위에선 B 씨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회사 내에서 버스기사로 일하는 남성이 약 600명이지만 여성은 약 40명이라는 점, B 씨의 나이가 3살 더 많고 입사 경력이 2년 더 빠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성립을 위한 '관계의 우위성'은 직급의 고하 등을 떠나 사실상의 우위만으로도 인정될 수 있다"며 "B 씨가 관계의 우위성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킴으로써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구애 갑질' 판단 쉽지 않지만…신속 종결해야

이번 판결은 이성인 직장 동료에게 장기간에 걸쳐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인 애정표현을 반복한 근로자에 대한 직장 내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을 징계사유로 인정하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한 판결이다. 흔히 '구애 갑질'로 분류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1명꼴로 직장에서 원치 않는 상대방으로부터 지속적인 구애를 받은 적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가 2022년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직장인 10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11%가 이 같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가 운영하는 직장 젠더 폭력 신고센터에 2022년 9월 14일부터 2023년 2월 10일까지 접수된 제보 32건 중 '강압적 구애'가 8건(25%)으로 가장 많았다.

구애 갑질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도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것,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인 연락을 하는 것, 불필요한 친절을 베푸는 것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구애를 거부했을 때 회사 내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직장 내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다.

김동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노동법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5주년, 구애 갑질과 앞으로의 과제> 기고를 통해 "직장 내 구성원들의 감정 표현은 기본적으로 사생활 영역에 해당하고 감정 표현을 주고받는 방식도 개개인마다 다르므로, 신고된 행위가 구애 갑질에 이르는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러나 피해근로자의 구애 갑질 신고가 있다면 회사의 입장에서는 피해근로자의 정신적 고통을 최소화하고 기업 질서 문란을 조기 수습하기 위해 신속하게 사안을 종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법과 사규에 명시적으로 정해진 절차를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조사 관여자의 인격권, 방어권 등 권리 보호와 공정성 유지를 위한 합리적 조치를 찾아 실행해야 한다"며 "회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에 대해서도 신고 사실에 대한 방어권을 보장해 주고, 향후 조사 일정을 고지해야 하며, 구애 갑질이 아닌 것이 밝혀질 경우 그 직원에 대한 비밀 유지 및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