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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김한나 법무법인 율사서재 변호사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제공한 자에게는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원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별ㆍ구체적인 사안에서 공평 타당하고 누구나 수긍할 만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아래에서는 실무적으로 다툼이 많은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계약직 근로자(이하 계약직)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이하 무기계약직)로 전환된 경우'와 '외형상 근로계약관계는 아니었으나 사후적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된 경우' 각각의 경우에 정규직 근로자(이하 정규직) 또는 일반직 근로자(이하 일반직)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이 인정될 수 있는지 그 판단기준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무기계약직의 경우 : 사회적 신분과 동일한 비교집단의 문제
2012년경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계약직을 무기계약직 전환하는 절차가 진행됐으나, 전환 이후 사업장에 따라선 무기계약직에겐 정규직에게 적용되는 호봉제를 적용하지 않거나 정규직에게 지급하는 제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간의 차별적인 처우를 이유로 한 법적 다툼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주장에 따라 세부적인 쟁점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판례는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에서 금지하고 있는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는지 ▲근로기준법 제6조뿐만 아니라 헌법 제11조(평등권)와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임금) 등에 비춰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하고 있는 동일한 비교집단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이 존재하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무기계약직은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열거한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며(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 다른 결론을 내린 판결도 있으나 다수의 하급심판결 역시 무기계약직은 선택과 이탈이 가능하고 사용자에 의한 변경도 가능하다는 이유로 전원합의체 판결과 동일한 취지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부산고등법원 (창원) 2024. 9. 5. 선고 2023나12763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6. 2. 선고 2020가합589974 판결 등). 무기계약직은 그 선택과 이탈의 가능성 측면에서 본다면 근로기준법 제6조에 열거된 국적, 신앙과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사인(私人)간의 계약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고용형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위와 같은 결론은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 무기계약직이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비교집단인지에 관해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공무원)보수의 성격이 근로의 대가라는 성격에 한정되지 않은 점, 근무조건의 결정방식, 전보 인사 등에 의한 업무의 변경가능성과 계급 또는 직무등급, 호봉 등에 따라 결정되는 보수체계 등을 고려한다면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전환 이전 계약직으로 근무한 기간을 초임연봉등급에 산입하지 않아 문제가 됐던 사건에서도 역시 동일 비교집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그 이유로 계약직에서 전환된 무기계약직과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임용된 정규직 사이에는 임용경로에 차이가 있고, 임용경로의 차이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으며 이로 인해 호봉 차이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시해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일반직) 사이의 '임용경로'의 차이를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제시하기도 했다(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3다1051 판결).
이 판례들은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근로자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공개경쟁시험으로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연공급(年功給)의 임금체계를 운영하는 사기업의 경우에도 동일한 판단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근로자성이 사후적으로 인정된 경우 : 동일가치노동의 문제
용역계약, 위임계약 등을 체결했을 뿐 근로계약관계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계약 해지 또는 계약기간 종료의 의사표시가 사실상 해고로 인정된 결과 사후적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된 경우 후속절차로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청구하는 사례도 있으며, 실제로 관련 소송을 직접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위와 같이 근로자성이 인정된 경우 개별ㆍ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사용자와 당해 근로자 사이에 근로조건을 명시한 계약 자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공식적이고 엄격한 채용절차가 존재하는 사업장이라면 채용절차에서부터 일반 근로자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용자로서는 근태관리나 징계 등에 있어 일반 근로자와는 다른 대우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뒤늦게 근로자로 인정된 자에게 일반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호봉제 등 보수규정을 곧바로 소급해서 적용하거나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인정하게 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문제될 수 있어 그 판단기준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된 자가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수준의 근로를 제공한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대법원은 동일가치의 노동이 있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과 작업조건을 비롯하여 근로자의 학력ㆍ경력ㆍ근속연수 등의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해 직무 관련 요소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속인적(屬人的) 요소까지도 그 기준으로 제시했고(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9다262193 판결), 하급심 판례에서는 업무직 근로자가 해고된 이후 일반직 근로자와 동일한 수당을 청구한 사건에서 "일반직과 업무직 사이의 채용절차 및 목적, 책임 및 권한, 경쟁을 거쳐 이루어지는 일반직의 공개채용절차와 추천과 면접 등 간소화되어 이루어지는 업무직의 채용절차의 차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학력 및 경력 등의 차이를 고려하면 업무직과 일반직이 동일가치의 노동을 제공한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2. 1. 27. 선고 2020나47509 판결).
이 판례들이 제시한 판단기준은 사후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된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므로 수행한 직무뿐만 아니라 채용절차, 학력과 경력, 책임과 권한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판례들은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인상이 예정된 호봉제를 적용하는 사업장의 경우이므로 연봉제 등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사업장의 경우에는 속인적 요소 등 일부 기준은 변경 또는 제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어
근로자 지위 인정 또는 변경에 따른 적정한 임금 수준은 원칙적으로는 새로운 근로조건에 대한 사용자와 근로자간의 합의로 결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합의 없이 재판상 다퉈지는 경우 곧바로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인정할 수 있는지는 근로자 지위의 인정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서 채용절차에서부터 임금체계에 이르기까지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고, 판례가 제시한 판단기준에 있어서도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