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어르신 일자리센터에서 어르신이 직업교육을 듣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어떻게 하면 고령자를 노동시장에 좀 더 오래, 안정적으로 붙잡아둘 수 있을까를 사회적 이슈로 부상시켰다. 최근 정년 연장, 계속고용 등이 한국 사회 핵심 의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령자 고용을 위해선 노사 간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근로자 입장에선 고령자 일자리가 저임금 일자리에 편중돼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고, 사용자 입장에선 고령자의 생산성과 임금이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결국 고령자 고용에서 노사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일본, '고령자고용안정법'으로 고용 촉진
일본은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법인 '고연령자 등 고용 안정 등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안정법)'을 시행하고 있다. 법은 55세 이상을 고연령자로 정의하고 고령자에 대한 고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일본이 고령자에 대한 고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엔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해소, 사회보장비 재원 안정적 확보가 있다.
법은 제정 후 주목할 만한 개정을 네 차례 거쳤다. 먼저, 1994년 개정으로 '60세 정년제'가 도입됐다. 고령자고용안정법 제8조는 정년을 두고 있는 사업주가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둘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60세 정년제는 1998년부터 시행됐는데, 당시 이미 기업의 93.3%가 60세 이상 정년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둘째, 2004년 개정으로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를 도입하고 2006년 시행했다. 고령자고용안정법 제9조는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고용제도 중 한 가지를 선택해 기업이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속고용제도는 60세 정년으로 퇴직한 고령자 중에서 특정 기준을 충족하면 재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특정 기준은 건강 상태, 일할 의욕, 출근율, 인사고과 등 객관적인 지표로 이루어져 있어야 하고, 이는 노사 협정이나 취업규칙을 통해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 고용확보조치 상황을 보면 정년 폐지 1.2%, 정년 연장 12.9%, 계속고용제도 85.9%로 대부분의 기업이 계속고용제도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속고용제도 대상자 기준을 두지 않고 희망자 전원을 계속고용한 기업의 비율은 39.1%를 기록했고 대상자 기준을 노사협정으로 정한 비율은 42.1%, 취업규칙으로 정한 비율은 18.8%를 기록 했다.
셋째, 2012년 개정으로 계속고용제도의 대상자 기준을 폐지하고 희망자 전원에 대한 고용확보조치를 취하도록 제도를 개편해 2013년 시행했다. 2013년은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노령연금(국민연금)의 지급연령이 65세로 상향 조정되고, 보수비례 연금인 후생연금의 지급연령이 기존의 60세에서 3년마다 1세씩 상향 조정되는 해였다. 2012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은 노동자 모두의 정년과 연금 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실시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넷째, 2019년 개정으로는 70세까지 취업확보조치 노력을 의무화하고 2021년 시행했다. 고령자가 희망하면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는 것을 사업주의 노력 의무로 부여했다. 취업확보조치 내용은 70세까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고용제도 도입 등 기존의 고용확보조치에 더해 업무위탁, 사회공헌사업 종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2024년 현황에 따르면 70세까지 취업확보조치를 실시한 기업은 31.9%로 전년보다 2.2%p 증가했다.
'장세대법' 시행 앞둔 대만
대만은 2025년 1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장세대 정책과 산업발전촉진법'을 통과시켜 2026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55세 이상 인구를 단순한 복지 수혜층이 아닌, 국가 성장의 핵심 자원으로 재정의하고 이를 산업 발전과 연결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이 법안의 설계와 시행 과정은 비슷한 도전을 앞둔 한국 사회에 중요한 선행학습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법은 55세 이상으로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국민을 '장세대(壯世代)'로 정의했다. 이 법은 기존 고령화 대응과는 결이 다른데, 법 주관기관을 복지 부처나 돌봄 부처가 아닌 국가 경제 전략의 컨트롤타워인 국가발전위원회에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고령화 문제를 사회복지 측면으로 접근하지 않고 '국가 성장과 경제 재편'의 의제로 격상시킨 조치로 풀이된다.
이 법은 '기본법' 형식을 취해 세부 규제보다는 방향과 철학을 제시하는 것을 택했다. 각 부처가 장세대 관점을 반영한 '국가 정책 백서'를 주기적으로 발간하도록 의무화해 정책 기조를 모든 부문에 확산하도록 했다. 고령층 일자리 창출에 그치지 않고 금융ㆍ관광ㆍ스마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니어 산업 공급망'을 조성하도록 했다. 고령층을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산업 생태계에 적극 편입시키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야심찬 구상은 법 통과와 동시에 여러 구조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선, 대만에는 이미 '중고령자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장기요양서비스법' 등 유사 법률이 존재한다. 때문에 기존 법들과 충돌해 행정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정책 대상인 '55세 이상으로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국민'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활발한 50대 경영자부터 돌봄이 필요한 90대 노인까지, 정책적 접근이 전혀 다른 집단을 하나로 묶어 효과적인 정책 설계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법안 발의자가 장세대라는 공공 명칭을 가족 회사 명의로 상표 등록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입법권을 사익 추구에 이용했다는 의혹이 담긴 정치적 스캔들이 발생하면서 법 시행 전부터 법 이미지에 큰 상처를 남긴 셈이다.
이러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통한 대만의 과감한 도전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 분명한 시사점을 남긴다.
첫째, 기존 법체계와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틀을 무리하게 얹기보다 기존 법인 '고령자고용법'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안에서 통합적이고 확장 가능한 방안을 찾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법을 만들더라도 기존 법들과 행정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상호보완할 수 있도록 법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 모든 고령층을 하나로 묶는 접근 대신 연령ㆍ건강상태ㆍ경제 수준별로 정책 대상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한 한국에서 세대 간 형평성을 해치는 구조는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청년층의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이익을 공유하는 상생 모델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책 설계와 추진 과정 전반에 걸쳐 이해충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투명성을 제도화해야 한다. 막대한 재정을 사용하고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일수록 이러한 윤리적 기반이 흔들리면 정책의 시행에 풍파를 겪게 된다.
대만은 장세대 정책과 산업발전촉진법으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기존 제도와의 조화, 세대 간 형평성, 그리고 제도화된 투명성이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낼 때만이 초고령사회에서 국가의 항로는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 역시 대만이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독일, '보조금ㆍ점진적 은퇴'로 노동시장 참여 유도
독일은 일반평등대우법(AGG, Allgemeines Gleichbehandlungsgesetz)을 근거로 다양한 영역에서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고용 영역에서는 채용, 승진, 교육 훈련, 해고 등 전 과정에서 연령에 따른 불리한 처우를 금지한다. 정당한 목적과 수단 등 엄격한 요건이 충족돼야만 예외적으로 차별적 처우가 허용된다. 한국의 연령차별금지법과의 차이점은 예외적으로 차별적 처우를 허용하는 정당화 요건, 입증 책임 전환 조항 등을 명문화해 민사적 권리구제 수단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정년 이후 고용 연장에 관해서 유연한 제도를 두고 있다. 독일의 사회보장법은 근로자가 정년 도달 이후에도 사용자와 서면 합의를 통해 고용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 2023년부터는 조기노령연금 수급자의 추가소득 상한 규제가 폐지되면서 연금과 근로소득을 병행 수령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러한 유연한 연금 제도(Flexirente)는 고령자에게 은퇴 시점의 자율적 조정권을 부여해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유도한다는 장점이 있다.
독일은 고령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실질적인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사회보장법에 따르면 통합보조금(Eingliederungszuschuss) 제도는 근로 능력이 저하된 구직자를 채용한 사용자에게 정부가 일정 비율의 임금을 보전해 준다. 55세 이상 고령자 고용 시 최대 36개월간 임금의 최대 50%까지 지원받을 수 있고, 단계적으로 장기실업자에게 최장 5년간 보조금을 지원해 기업의 고령자 채용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
또한, 점진적 은퇴(Altersteilzeit) 제도가 마련돼 있다. 고령 근로자가 근로시간을 줄여 점진적으로 퇴직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55세 이상 근로자가 근로시간을 기존의 50%로 줄인다면 사용자는 그만큼 감소된 근로자 급여의 20%와 종전 근로자분 연금 납입액의 80% 이상을 납부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근로자 입장에선 고용 안정성과 삶의 질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고령자의 역량 강화를 위해 재교육 제도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회보장법에 따라 기업은 재직 중인 고령 근로자의 직무 전환과 재교육을 위해 연방고용청으로부터 교육비와 임금 보조를 받을 수 있다. 2024년 4월부터는 구조조정 상황에 처한 근로자가 직업 교육에 집중하고 직무전환수당(Qualifizierungsgeld)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종합하면, 독일의 고령자 고용지원제도는 단일한 법률이나 단기적 보조에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ㆍ구조적ㆍ실질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기사 도움>
- 일본 :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
- 대만 : 유정훈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ㆍ옥재완 법무법인 디엘지 연구원
- 독일 : 민승현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이 기사는 노사발전재단과 공동 기획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