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석재채취장에서 토사 붕괴사고가 발생하자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출동했다. (사진=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산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산재 발생 기업에 엄격한 제재를 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에 노동계는 환영을, 경영계는 우려를 내비쳤다. 특히, 경영계는 제재 강화만으론 산재를 감소시킬 수 없다며 예방 지원을 강조했다.
 
李, "산재 반드시 줄여야…기업 제재 강화"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부터 시행돼 올해로 시행 3년째를 맞이했지만, 재해자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재해자 수는 13만348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4만2771명으로 법 시행 이후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는 2022년 2223명에서 2023년 2016명으로 소폭 감소했으나, 지난해 2098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늘어난 산재에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 열린 지난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이후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산재가 안 줄면 직을 걸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를 미이행해도 최소 과태료가 5만 원"이라며 "이렇게 적은 과태료를 내는데 누가 법을 지키겠나"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에게 이익의 몇 배에 해당하는 고액의 벌금,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있어야 법을 지킬 것"이라며 "산재가 반복되는 사업장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당정은 ▲산재 발생 시 과징금 신설과 과태료 강화 ▲산재 기업에 대한 영업정지, 공공 입찰 제한 기준 강화 ▲중대재해 기업의 신규 대출 한도 축소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3일 국정기획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실효성 있는 산재 예방으로 사고 사망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노 "제재 강화 환영" vs 사 "예방 지원 먼저"
 
산재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입장에 노동계는 환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반복 산재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공공 입찰 제한, 영업정지는 필요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처벌 규정 강화와 산업안전보건법 과태료 규정에 대한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민주노총에서 그간 중대재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 왔고 중대재해처벌법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면서도 "법은 있지만 제대로 작동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중대재해 기업에 대해 실질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다양한 경제적 제재 조치 도입에 찬성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 과징금 도입을 비롯해 다양한 제대 방안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제재 강화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산재 예방 정책 개선 토론회'를 열고 산재 감축을 위해서는 처벌 강화 보다 예방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주요 선진국보다 우리나라가 근로자 사망 시 사업주에게 가해지는 형사 처벌 수준이 더 높다"며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형사 처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뚜렷한 중대재해 감소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처벌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산재가 일어나는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도 "우리나라의 처벌 수준은 이미 어떤 나라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처벌만으로 산재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면 진작에 해결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 시스템 구축"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예방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실효성 있는 위험성 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대한 처벌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안전 불감증 개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산재 발생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근로자의 부주의, 안전 불감증이 크게 작용한다"며 "정부가 관리 감독을 강화하더라도 근로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이 근로자의 무모한 작업을 모두 사전에 대처해 막는 것은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근로자 인식 개선을 위해 사업장 내 CCTV 설치, 웨어러블 기기 착용 등을 검토해 봐야 한다"며 "산재 방지가 최우선 법익이라면 개인정보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재 집중 '건설ㆍ제조업' 원청은 긴장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재해자 수는 3만4370명, 제조업 재해자는 3만2767명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사망자 수 역시 건설업 496명, 제조업 476명으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인 46.3%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산재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만큼 정부가 꺼내든 산재 처벌 강화의 칼날은 건설업ㆍ제조업 원청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과 제조업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업무가 이루어져서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건설노조)는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건설 현장의 산재를 줄이려면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이 최우선"이라며 "불법 하도급으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이 심한 노동강도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재영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도 "건설업뿐 아니라 제조업도 불법 다단계 하청구조가 산재의 주요 원인"이라며 "금속노조 사업장의 경우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의 거의 대부분이 하청 노동자"라고 말했다.
 
정부도 건설ㆍ제조업 산재 발생의 원인을 다단계 하도급으로 보고 관련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하도급이 반복되면서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위험의 외주화가 반복되고 이것이 산재로 이어지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지시했다.
 
노동계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을 위해 정부가 원청에 대한 제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불법 하도급 근절을 위해 원도급사가 하도급사들이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는지, 불법 다단계 하도급 계약 체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구체적 관리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불법 하도급 적발 시 형사처벌, 입찰제한, 영업정지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 국장도 "강력한 처벌이 산재 예방의 전제 조건이라고 본다"며 "강력한 처벌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실상 권고에 불과하다. 이제는 법으로 원청의 직접 책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청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을 만들면 오히려 안전 책임 회피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계가 주장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의 강력한 처벌 규정은 오히려 원하청이 서로 배려하고 협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안전 책임을 회피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며 "적정 수준의 처벌과 인센티브 제도를 병행해 원하청 간의 협업을 유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원청의 안전관리 소홀을 가져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원청은 지금도 하청에 대한 적극적인 안전 관리가 불법파견의 징표인 지휘명령권 행사로 오인될 수 있어 소극적인 면이 있다"며 "노란봉투법이 통과돼 실질적 지배력에 따라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원청의 안전관리자가 지금보다 안전관리에 더 소극적이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은 처벌 강화 외 '추가 정책' 있어야"
 
노사는 중소기업의 경우 처벌 강화 외에 추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상시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산재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자 수는 9만8180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68.7%였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 사망자는 1349명으로 전체의 65.2%를 차지했다.
 
노동계는 중소기업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50인 미만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주요 규제가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적용 제외된 채 수십 년간 제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며 "사각지대를 없애고 실질적인 산업안전 예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전보건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중소기업을 위한 공동 안전관리자 제도를 강조했다. 최 실장은 "민주노총에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주장했던 공동 안전관리자 제도가 시범 사업으로 도입됐지만 예산이 삭감돼 사업 종료를 앞두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 대책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중소기업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의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지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안전시설ㆍ장비 지원사업이 중소기업의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관련 예산의 대폭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 산업 현장에서 더 쉽고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스마트 안전 장비 기술 개발과 보급 지원도 필요하다"며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안전 장비를 잘 활용하면 작업 효율성, 경제성, 안전성까지 모두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용윤 동국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도 "산재 발생 중소기업에게 형사 처벌에 더해 경제적 제재까지 가한다면 산재 발생으로 경영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경제 제재보다는 지원과 보상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