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사진=뉴시스)
 
대법원이 원하청 근로자 사망사고가 연속으로 3번 발생한 HD현대중공업 안전관리책임자들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 사고가 발생해 경영책임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19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 14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대표 A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특수선사업부 대표 B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중공업 법인에게 선고된 벌금 5000만 원도 확정됐다.
 
2020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는 9개월간 3건의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1건은 원청 근로자, 2건은 하청 근로자에 대한 사망사고였다.
 
첫 번째 사고는 추락사였다. 하청 근로자 C 씨는 24m의 LNG 트러스트에서 비계 재료 조립을 위해 이동하던 중 넘어져 개구부로 추락해 사망했다. 추락 당시 추락 방호망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2개월 뒤엔 원청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원청 근로자 D 씨는 수중함 발사관을 정렬하는 작업을 마친 뒤 외부 문밖으로 나오다가 문에 끼어 9일 만에 뇌 압박으로 사망했다. 당시 원청은 수중함 발상관 정렬작업에 대해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고, 위험성 평가도 실시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고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하청 근로자가 또 사망했다. 하청 근로자 E 씨는 용접 작업을 위해 아르곤 가스가 주입된 파이프에 들어갔다가 가스를 흡입해 질식사했다. 사고가 발생한 파이프에 출입 금지 표지판이 없었고, 감시인도 존재하지 않았다.
 
검찰은 세 건의 근로자 사망 사고에 대해 원청 사업부 대표 A 씨와 B 씨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법원은 하청 근로자 C 씨와 E 씨의 사망에 원청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비계 재료 조립에 대해서는 추락보호망 설치 의무가 없고 하청에서도 설치를 요청한 적이 없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C 씨가 한 비계 재료 조립 작업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에게 안전조치의무가 없다"면서도 "C 씨가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했다면 원청에게 안전조치의무가 인정돼 법 위반이 인정돼 유죄"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E 씨의 아르곤 질식사에 대해서도 A 씨의 책임을 인정했다. A 씨는 E 씨가 개방 공간에서 작업을 해 원청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E 씨의 작업은 개방 공간이 아닌 밀폐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며 "A 씨는 아르곤 가스가 파이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지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했다.

법원은 B 씨에게 원청 근로자 D 씨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현대중공업은 표준 작업지도서와 정비 지침서 작성을 통해 수중함 발사관 정렬 작업에 대한 작업계획서 작성과 위험성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표준 작업지도서와 정비 지침서 작성만으로 정렬 작업에 대해 작업계획서 작성과 위험성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며 "B 씨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주의의무 행위 주체임에도 협착 위험에 대해 교육방호조치 등 필요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원청 근로자가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동료 근로자의 중대한 과실로 사고가 발생해 B 씨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동료 근로자의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해도 B 씨가 작업계획서 작성 등 의무를 다하지 않아 회피가능성이 없었다는 주장은 인정될 수 없다"며 "실질적인 안전조치가 이루어졌다면 근로자 사망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법원은 사고 이후 원청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유가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이 하청 근로자 사고에 대해 원청에도 이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원청이 사고 이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유가족도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은 1심의 유죄 판단과 양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원청의 상고로 상고심이 이어졌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1심 판결을 유지한 원심 판단에 경험칙 위반이나 법리 오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발생한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아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피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면 오히려 무죄가 선고됐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의 판결을 보면 원청 대기업이 서류 작성 의무만 이행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며 "만약 이번 사건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 일어났다면 오히려 무죄가 선고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원청에 대한 처벌 수위는 높아졌지만 실질적으로 원청 대기업이 기소돼 처벌받는 사건은 극히 드문 상황"이라며 "처벌을 강조하는 법만으로는 원하청의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원청의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청의 책임 범위를 명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원청과 하청의 안전조치의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예방으로 이어진다"며 "법이 처벌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원하청의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현장에서 예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