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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5-09-02 17:03:19

    수정 : 2025-09-02 17:09:19

기로에 선 중처법, 신속 수사ㆍ엄정 처벌이 산재 줄일 수 있을까

2025-09-02 17:03:19



법규 불확실성은 공통된 지적…해법 두고 학계ㆍ노사 의견 엇갈려
[2025년 10월호 vo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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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시내 한 아파트건설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오히려 산업재해자 수와 산업재해율이 증가했다는 통계가 나온 가운데 그 원인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수사 지연과 낮은 형량이 지목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신속하고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재해자 수와 재해율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처법, 산재 억제 효과 미미…수사 지연ㆍ높은 무죄율 탓?
     
    앞서 지난 8월 18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산재 예방 효과는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이후에도 재해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재해자 수는 ▲13만348명(2022년) ▲13만6796명(2023년) ▲14만2771명(2024년)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한편 사망자 수는 큰 변동이 없었다. ▲2223명(2022년) ▲2016명(2023년) ▲2098명(2024년)으로 소폭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올해 7월 24일까지 중대산업재해 발생 보고 건수는 2986건이었다. 고용부는 이중 1252건을 수사했고, 276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중 121건을 기소했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은 총 53건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과정에서 수사 지연, 높은 무죄율, 낮은 유죄 형량 등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의심돼 수사 대상에 포함된 1252건의 사건 가운데 고용부가 수사 중인 사건은 790건이고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127건이다. 즉 전체 수사 대상 사건의 73%인 917건이 현재 수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전체 수사 대상 사건의 73%가 수사 중이라는 사실은 수사 지연 혹은 처벌 지연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이는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사업주 등이 대형 로펌을 선임하는 등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하도록 유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분석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1심 재판을 받은 56명 중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6명이다. 무죄 판결 비율은 10.7%로 일반 형사사건 무죄판결 비율(3.1%)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49건의 유죄 판결 중 47건의 징역형 선고 판결을 분석한 결과 형량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으로 평균 1년 1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하고 있는 하한선인 1년을 겨우 넘긴 수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법규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수사가 지연되고 무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공식적이고 구속력 있는 구체적인 이행 기준과 면책 요건을 명확히 한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다. 또한 시행 규칙 신설,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령 개정 등을 통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8월 11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처법, '낮은 예측ㆍ이행가능성'으로 태생적 한계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법규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법 자체가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모두 낮은 '태생적 한계를 지닌 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수사가 지연되는 이유로 기소 의견을 내는 주체가 고용부라는 사실도 지목됐다. 법의 전문가가 아닌 고용부가 기소 의견을 내기 때문에 불명확한 근거로 기소되는 일이 잦고, 이후 보완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분석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법의 핵심은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인데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러한 기본은 갖추지 못한 법"이라며 "그런 모호한 법을 바탕으로 고용부가 판단하기 어려운 사항까지 전부 기소 의견으로 넘기니 수사 과정에서 보완수사를 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 교수는 "모호한 법일수록 수사기관이 남용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기관은 지속적으로 처벌하자는 의견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판사 입장에서는 법 자체가 모호하고 엉성하다 보니 유죄 판결을 내리기 쉽지 않다"며 무죄 판결이 다른 법에 비해 많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중대재해를 수사하는 것이 사실상 근로감독관이라는 것도 문제의 원인으로 제기됐다. 고용부 내부에서 근로감독관과 산업재해감독관으로 나눠 놓고 있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는 모두 근로감독관으로 채용된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임금체불, 퇴직금 등 임금에 관한 업무가 대다수인데 산업재해와 관련된 업무를 떠맡게 돼 전문성이 떨어지고 이는 곧 수사 지연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근로감독관 채용 시험에서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을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에게 중대재해를 수사하라고 해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이와 관련해 전문적인 교육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다른 범죄에 비해 무죄 비율이 높은 것에 대해 "최소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산업재해에서 그러한 고의가 있었음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며 "대부분의 현장에 안전조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안전 조치가 없고, 의도성까지 있었음이 입증돼야 유죄가 나올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현장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경기ㆍ비용 고려하면 중처법 시행 후 산재 증가율 더 높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가 재해자 수, 재해자율의 수치적 비교에 그쳐 입체적인 분석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 상황과 기업이 안전보건에 투입한 비용을 고려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재해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건설 경기는 2020년을 넘기면서 혹한기를 맞이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32조9960억 원이었던 국내 건설 수주액은 올해 6월 기준 22조4385억 원이다. 건설업 취업자 수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건설업 취업자 수는 2017년 이후 줄곧 200만 명선을 유지했지만, 올해 들어 200만 명 선이 붕괴되면서 회복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올해 상반기 취업자 수는 193만9000명이다.
     
    산업재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업계의 경기가 침체된 만큼 건설 현장도, 건설 근로자 수도 적어졌다. 따라서 산업재해는 오히려 줄어들어야 하지만 재해자 수와 재해율은 소폭 증가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정부와 기업은 안전보건에 투자하는 비용을 늘렸다. 근로감독관은 300여 명에서 900여 명으로 약 3배 증원했고, 산재 예방 예산은 5천억 원에서 1조3000억 원으로 증액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숫자로 보이는 수치보다 산업재해가 더 많이 증가했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즉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오히려 산업재해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진 태생적 한계로 인해 기업들은 안전보건 비용만 지출하고 더 나아가서는 기업의 안전을 뒤틀리게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산업재해가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며 "실질적인 안전은 뒷전이고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안전이 우선시 되면서 현장은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처벌이 강해진다고 해서 범죄 억제 효과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형사법학계의 정설이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올린다고 해서 산업재해가 줄어들 것이란 것은 추측적, 직관적인 분석"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의 법규가 불명확해 시행령을 통해 벌칙조항을 세부적으로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고 실형률이 낮아 예방 효과가 미미했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실형률을 높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산업재해율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방준식 영산대 법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에 대해 판결할 때는 명학한 양형 기준을 정한 뒤에 객관적으로 보기에 과한 형량이라도 형사 처벌을 결단력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과도기적인 지금 시점에서는 충격 효과가 있어야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방 교수는 "형사 처벌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제재 또한 병행돼야 한다"며 "중대재해 사업장 명단 공개가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대재해가 사업적으로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처벌" vs 사 "예방"…중처법 두고 노사 방점 달라
     
    이 같은 보고서 결과를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노동계는 보고서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신속하고 엄정한 처벌이 산업재해율을 낮출 것이라고 본 반면 경영계는 예방 법률체계가 우선돼야 한다고 봤다.
     
    노동계에서는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잘못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논란에 휩쓸려 잘못된 양형 기준을 세웠다고 봤다. 이를 바로잡아 중대재해처벌법의 신속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이 이어진다면 산업재해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재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처음부터 이중처벌 논란 등 다양한 논란이 있었던 법이다. 양형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논란이 반영된 것 같다"며 "법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처음 시행할 때 강력한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자는 취지도 있었다. 기업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에는 관심을 가지고 안전보건에 투자했다"며 "하지만 낮은 형량이 선고되는 일이 반복되자 중대재해처벌법이 별것 아니라는 잘못된 사인을 줬다. 강력한 처벌을 통해 기업에게 경각심을 줘야 산업재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는 법이기 때문에 다른 법에 비해 수사가 길어지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과도하게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법이 제정될 때 구형 가이드라인을 2년으로 잡아 놨는데 이에 비해 낮게 구형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 산업재해가 해소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며 "다만 한국 산업재해 특성상 경영책임자의 처벌이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계가 중대재해처벌법을 강조해 왔다.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되고 처벌이 엄정하게 집행되면 산재는 분명 감축될 것"이라고 봤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수사 지연과 낮은 형량이 중대재해처벌법 법률 자체가 불명확하고 중대재해 특성상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 법률체계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다.
     
    반면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수사가 지연되는 이유는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법률 규정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라며 "형량이 낮은 것은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중대재해처벌법 특성상 법원의 어쩔 수 없었던 판단이라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 본부장은 "엄벌주의의 효과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적절한 형벌도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 적합한 실효성 있는 법률체계를 가져가는 정비가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경영책임자와 중간관리자, 근로자가 모두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안전 문화를 정착해 나가기 위해서는 예방 법률체계들을 실효성 있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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