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9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과 과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경총)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를 위한 독립적인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론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구로 재편돼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전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과 과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 위한 독립기구로 거듭나야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정흥준 한국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사노위가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대화를 위한 독립기구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노동 정책은 다른 정책과 달리 이해당사자의 수용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ㆍ임금체불과 같은 문제는 정부 주도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정년 연장 등과 같은 의제는 노사 합의 없이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 중심의 사회적 대화는 강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지만 노사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가 수단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정 교수는 "정부 중심의 사회적 대화기구는 행정력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노사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를 수단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경사노위의 개편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999년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정부 주도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한국노총 또한 지난해 12ㆍ3 비상계엄 당시 경사노위 참여를 중단한 바 있다.
 
최근 민주노총이 국회 주도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밝히면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경사노위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 다시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교수는 "국회, 총리실 등에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사노위가 전문성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만큼 사회적 대화의 플랫폼 역할을 부여받아야 한다"며 "경사노위는 내용적 주도권을 내려놓고 노사 단체가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사노위 산하의 위원회가 1년 단위로 운영되고 있어 지나치게 길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미 전문성 있는 노사 위원과 공익위원들이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1년씩이나 진행할 필요가 없다. 쟁점에 대해 신속하게 검토하고 위원회는 6개월 정도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6개월 안에 합의가 되지 않아도 괜찮고 위원회의 끝이 꼭 합의일 필요는 없다. 논의한 결과를 국민께 소상히 밝히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사노위가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대화의 독립기구가 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일자리, 고령화, 기후위기 등 산적한 노동의제를 현재의 경사노위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경사노위를 대통령 소속 기구가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구로 재편해야 한다. 자체적 인력과 예산을 가지고 사회적 대화를 긴 호흡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게끔 기반을 마련하면 의미 있는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사 단체의 방어적인 태도로 인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정 교수는 "노사 단체 모두 실제 경제단체 회원사나 사업장 노조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때가 많다"며 "사회적 대화를 방어 수단으로 삼지 말고 전략적으로 양보와 협력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 결과 아닌 과정에 의미 둬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대화가 단순히 정책 합의나 타협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대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의 본질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고, 그 과정 속에서 사회적 신뢰 자산이 축적된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산업혁명 시기를 사례로 들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과거 산업혁명은 자본 축적과 사회적 약자의 몰락을 동시에 가져왔다. 당시에는 사회적 대화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자본과 착취의 갈등이 깊어졌다"며 "이에 대한 해법이 노동법이었다. 이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노사 간 갈등은 남아 있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현대 사회가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어 사회적 대화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현대 사회가 마주한 복합 위기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의 확산, 저출생 고령화, 노동시장의 양극화ㆍ파편화 등이다. 권 교수는 "노동이 장소ㆍ조건ㆍ시간별로 분절되며 연대가 약화되고 있다. 미래의 노동은 기존 노동3권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길 수 있다"며 "헌법적 권리의 지속 가능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노사가 공감할 수 있는 의제부터 연습하듯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사회적으로 닥칠 것이라고 예상되는 문제 중 노사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 보자"며 "AI와 같은 주제를 두고 지금부터 연습하듯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위기 상황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타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사회적 대화는 타협의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화 자체가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경사노위를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기구로만 이해하려 한다"며 "이런 시각이야말로 사회적 대화를 협소하게 만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사회적 대화의 틀이 국회나 경사노위에 국한돼야 할 이유는 없다. 사회적 대화라고 하는 논의 자체가 존중돼야 한다"며 "사회 구성원들이 파트너로서 사회적 대화기구를 가꿔 나가야 한다. 경사노위 같은 조직체가 처음부터 완성형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 다층화와 중층화가 핵심
 
이어진 토론에서 전문가와 노사, 정부 관계자는 경사노위의 역할,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 노사단체의 책임 등을 두고 사회적 대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회적 대화의 내용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고 봤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사회적 대화의 가장 단골 주제는 노동 체제 개혁"이라며 "시대에 필요한 개혁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이 사회적 대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선임연구위원은 이해 당사자들이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지를 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세팅하고 있는 개혁 과제들은 사회적 대화가 상당히 많이 필요한 과제들"이라며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또한 사회적 대화 없이 입법됐다. 정부 위주의 사회적 대화를 다원화하고 중층화하는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준호 전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다. 채 교수는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3%다. 이제 나머지 87%의 노동자에게 어떻게 목소리를 줄 것인가가 고민 지점"이라며 "업종별ㆍ산업별ㆍ지역별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층화와 묶여 있다. 지역 통합 사회적 협의 기구를 통해 지역 내 사회적 갈등을 논의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은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의 중심을 잡아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본부장은 "노란봉투법, 초기업 교섭, 연금 개혁 등에 있어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정 교수의 발제처럼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 과정에서 입법 기능을 가진 국회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고 봤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노사 양측의 입장이 균형 있게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본부장은 "노란봉투법 입법, 통상임금 등 노사 현장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노사의 입장이 반영 안 된 채 실행됐다"며 "꼭 합의를 해야 한다기보다는 충분히 논의를 해야 한다는 시각이 필요하다. 주4.5일제 등 국정 과제에 대해 노사가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용 고용노동부 노동개혁총괄과장은 "경사노위는 다소 소강상태지만 노사정이 함께하는 사회적 대화는 여전히 지속 중"이라며 "노란봉투법이 사회적 대화 없이 입법된 데 토론회 참여자들이 아쉬움을 표했지만, 시행 방안에 있어서는 태스크 포스(TF)를 구성해 노사의 의견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과장은 "초기업 단위 교섭, 주 4.5일제와 같은 과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상생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다양한 현장 사례를 토대로 작은 변수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불확실성을 최소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