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국공항노동자연대가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3번 출구 앞에 모여 '전국 공항 노동자 총파업 대회'를 열었다.(사진=공공운수노조)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항 노동자들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공항, 철도 등 일부 사업장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필수공익사업 제도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노조의 실질적인 단체행동권 보장을 위해 필수유지업무 범위와 업무 유지율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파업 효과 미미한 필수공익사업…"교섭력 약화돼"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1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3번 출구 앞에서 '전국 공항 노동자 총파업 대회'를 열었다. 노조의 총파업 강행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전면 마비가 아니라 불편 초래에 그칠 전망이다. 공항이 전면 마비되지 않는 이유는 필수공익사업 제도에 있다.
 
노동조합법은 ▲철도ㆍ도시철도 ▲항공운수 ▲수도 ▲전기 ▲가스 ▲석유 정제ㆍ공급 ▲병원 ▲혈액 공급 ▲한국은행 ▲통신 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고, 파업 시에도 참가자의 50%까지 대체근로를 허용한다. 또한 필수공익사업에서 필수유지업무를 정해 쟁의행위 시에도 일정 비율의 업무를 유지하도록 했다.
 
필수유지업무의 범위와 업무 유지율은 노사 합의로 결정하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노동위원회가 결정한다.
 
공항의 경우 공항 내 주차장을 관리하는 교통관리사업부, 공항 내 셔틀버스 운영, 탑승교 설치 등이 필수유지업무다. 쟁의행위 시 업무 유지율은 교통관리사업부 17%, 공항 내 셔틀버스 40%, 탑승교 설치 78%다.
 
파업을 하더라도 사전에 정해진 업무 유지율을 준수해야 해 인천국제공항에 미치는 타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하철의 경우에도 서울지하철 1~4호선은 업무 유지율이 65%, 5~8호선은 79%로 파업이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진다.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필수유지업무협정에 따라 오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운행률 100%를 유지한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필수공익사업 노조들은 파업에 제한이 커 교섭력이 약화된다고 주장해 왔다. 파업의 효과가 적다보니 사측이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파업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교섭에 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호영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미디어소통국장은 "지하철 파업의 경우 출퇴근 시간과 그 외 시간의 업무 유지율이 다르다"며 "파업이 의미 있는 출퇴근 시간에는 운행률이 100%여서 파업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업의 위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사측도 알기 때문에 교섭력이 약하다"며 "파업을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사측이 교섭에 나오다 보니 노조도 이에 반발해 오히려 파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한적인 파업은 근로자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국장은 "모두가 함께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유지율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비조합원, 파업 미참여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져 내부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필수공익사업의 제한적 파업은 교섭력 약화는 물론 단결력 약화까지 가져와 노동3권 전반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서울교통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공공운수노조가 개최한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 국회 토론회'에서 항공, 가스 등 다른 필수공익사업의 근로자들도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박수용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 대의원은 "항공운수사업이 필수공익사업이 되면서 조종사들의 단체행동권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항공 운송에 절대 다수를 차지해 그나마 쟁의행위가 의미가 있었지만 저가항공사들이 급격한 성장 이후에는 대체 항공편도 충분해 쟁의행위의 효과가 거의 없다"고 했다.
 
백종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대외협력국장도 "제한적으로 파업을 할 수밖에 없어 노동자들이 파업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있다"며 "회사만 제한적 파업으로 손실을 거의 보지 않으면서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에 따라 인건비 절약이라는 이익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공익ㆍ유지업무 확대 시도에 '반발'
 
이러한 노동계 주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필수공익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버스의 경우 공항, 철도와 달리 노동조합법상 필수공익사업에 해당하지 않아 제한 없는 전면 파업이 가능하다. 올해 파업에 돌입한 창원 버스와 울산 버스의 경우 높은 파업 참가율을 보였다.
 
창원 버스의 경우 파업 참여율이 95%에 달해 669대의 버스가 운행을 멈췄다. 울산 버스도 889대의 버스 중 702대가 파업에 참여해 78.9%의 파업 참여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버스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이 이어지자 서울특별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버스 사업의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시도지사협의회는 시내버스 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노동권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며 시도지사협의회의 건의를 거부했다.
 
버스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이 계속되자 울산광역시, 창원시는 정부에 버스 사업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다시 요청할 계획이다. 지난 5월 버스 파업 당시 장금용 창원시장 권한대행은 "창원은 버스 말고는 대중교통이 없는데 버스가 파업하면 차가 없는 학생, 사회적 약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며 "관련 제도와 시스템 정비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필수공익사업 확대뿐 아니라 필수유지업무 확대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1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공항 환경 미화 업무도 필수유지업무에 포함돼야 한다며 지정 신청을 한 상태로,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이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공사의 지정 신청에 반발하고 있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성명을 통해 "사측의 주장대로 인천공항 환경 미화 업무까지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돼 필수유지업무가 광범위해지면 인천공항 노동자들에게 지금보다 과중한 업무가 강요되고 장기적으로 안전하고 질 좋은 공항 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미 사측이 필수유지업무제도를 노동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인천지노위의 결정으로 필수유지업무 범위가 늘어나면 인천공항은 물론 유사 업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필수공익사업, 필수유지업무 확대에 대해선 정부와 노동위원회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길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버스는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업이다 보니 필수공익사업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이라며 "지금 당장 범위를 넓히는 것은 어려워 현행 유지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관련 문제에 대해 정부가 노사의 목소리를 다시 모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전국적으로 버스 파업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최근에 관련 논의가 더 나오는 상황"이라면서도 "버스 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면 노사 간 원만한 합의를 저해하고 사측의 소극적인 태도를 유발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수유지업무 확대도 노동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최대한 노사의 의견을 듣고 합의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사의 대화가 소홀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확대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 '필수유지업무 합리화'는 있어야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쟁의행위 제한은 공익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때문에 직접적인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필수유지업무 범위와 업무 유지율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 교수는 "필수공익사업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적어도 필수유지업무는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노사가 대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도 "공익과 직결되는 사업이다 보니 사기업과 동일한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적어도 필수유지업무 범위와 업무 유지율은 조정이 필요하다. 출퇴근 서울 지하철처럼 100%에 육박하는 업무 유지율로 어떻게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겠나"고 지적했다.
 
다만 필수유지업무 결정이 노사 합의가 아닌 노동위원회 결정에만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현행 제도는 노사가 필수유지업무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면 노동위원회가 결정을 내리다 보니 사측이 보다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제도적 억압이 오히려 노사는 물론 노정관계도 악화시킬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수유지업무 개편에 있어 노동위원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는 노동위원회를 통해 노사 합의에 개입하기보다 노사가 정말 제대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동위원회의 중립성이 과거보다 강화돼 필수유지업무 결정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집행위원장은 "과거에는 노동위원회가 소위 정권에 따라 노동계 편을 들고 경영계 편을 든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중립성이 강화되며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며 "필수유지업무 결정은 노사 간 합의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보니 노동위원회가 지금처럼 어느 정도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