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지난 26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근로자 자위 확인 소송 2심 선고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속노조)

법원이 현대제철 당진공장 중장비 운송, 정비, 폐수처리 업무에 대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은 모든 지원 업무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불법파견 인정 범위가 줄어들었다. 원청의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 활용과 직접생산 공정과의 관련성을 근거로 업무를 세분화해 판단한 것이 2심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인천제3민사부(재판장 기우종)는 지난 26일 현대제철 하청 근로자 A 씨 등 1000명이 현대제철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1심은 '모든 지원 업무' 불파 '인정'
 
A 씨 등은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공정시험, 운송, 정비, 폐수처리 등 지원 업무를 한 하청업체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원청이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 등을 통해 직접ㆍ구체적으로 업무 지시를 했다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변론 종결일 당시 정년이 지난 하청 근로자들을 제외한 923명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1심은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지휘ㆍ명령을 인정했다.
 
1심은 "원청이 하청 소속 현장대리인을 통해 작업 요청을 했더라도 이들은 원청의 지시ㆍ결정 사항을 하청 근로자들에게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며 "원청 근로자들이 MES를 통해 하청 근로자들이 해야 할 작업 물량ㆍ위치를 정해주고 실시간 문자를 보내는 등 업무 수행을 관리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하청 근로자들이 작업 방법에 있어 일부 원청의 명시적 지시 없이 업무 수행을 했더라도 이것은 반복 작업을 통해 작업표준과 지시 사항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원청의 지시ㆍ관여가 없다고 볼 수 없다"며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상당한 지휘ㆍ명령이 인정된다"고 했다.
 
1심은 하청이 원청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봤다. 1심은 "하청이 담당한 지원 업무는 원청의 주요 공정 생산 라인과 연동돼 함께 작업이 이루어졌다"며 "원청과 근무시간, 작업 방식, 작업 장소가 동일해 하청의 재량이 없어 원하청이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청 근로자들이 원청 전산시스템에 로그인해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며 "하청이 원청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불법파견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 불파 범위 '축소'…"중장비ㆍ정비ㆍ폐수처리 제외"
 
2심은 불법파견 인정 범위를 축소했다. 2심은 중장비 운송, 정비, 폐수처리 업무를 담당한 하청 근로자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을 부정했다. 2심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된 하청 근로자의 수는 923명에서 566명으로 줄었다.
 
이 세 가지 업무의 공통점은 원청이 MES를 이용해 업무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MES는 모든 생산 활동을 관리하는 통합생산관리시스템으로 대법원은 MES를 원청의 지휘ㆍ명령 징표로 인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도 원청이 MES를 이용해 지시한 경우 불법파견이 인정됐다.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은 중장비 운송, 정비, 폐수처리 업무도 원청의 관리시스템은 있었지만 2심은 직접적인 지휘ㆍ명령 징표로 보지 않았다. 2심은 "원청이 중장비 운송 업무를 위해 사용한 운송관리시스템은 인원수, 작업 순서를 특정 없이 포괄적인 지시만 가능했다"며 "하청 현장관리인이 구체적인 지시를 해 원청의 상당한 지휘ㆍ명령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2심은 원청이 정비 업무 관리에 사용한 '맥시모' 전산프로그램도 원청의 지휘ㆍ명령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원청이 하청에 작업 의뢰를 하는 전산프로그램을 사용했지만 하청이 작업 수행을 원치 않으면 작업을 취소했고 원청의 입력 내용에 대해 실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다"며 "원청의 상당한 지휘ㆍ명령이 인정되지 않고 하청업체가 단기간 교육만으로 할 수 없는 정비업무를 제공해 전문성도 있어 불법파견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직접생산 공정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폐수처리 업무에 대한 불법파견도 부정됐다. 2심은 "폐수처리는 철강 생산을 위한 직접 공정과 구분돼 생산 공정의 일부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청이 폐수처리 업무를 상시 감시하고 자동제어 시스템을 사용했지만 별도로 구체적인 업무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청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하청에 업무 수행을 요청해 이것만으로 원하청이 공동 작업을 했다는 점이 인정될 수는 없다"며 "폐수처리 업무도 불법파견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 직후 노동계는 모든 하청 근로자에 대한 불법파견이 인정돼야 한다며 이번 판결을 비판했다.

이상규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현대제철의 모든 하청 근로자는 불법파견"이라며 "현대제철은 더 이상 하청 근로자들의 기본권을 탄압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착취해 추가 이득을 누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대제철이 불법행위로 고통받는 하청 근로자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소송을 이어 나간다면 지회는 가능한 수단과 모두 동원해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도 지난 26일 논평을 통해 "1심에서는 모든 공정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됐다"며 "판결 이후 하청 근로자 노동환경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떤 새로운 증거가 3년 안에 나올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MES 활용ㆍ직접 공정 관련성'이 불파 여부 갈라
 
이번 판결에서 불법파견 여부를 가른 중요한 두 축은 'MES 활용 여부'와 '직접 공정 관련성'으로 보인다.
 
2심에서 MES를 활용해 업무 지시를 한 지원 업무는 모두 불법파견이 인정됐다. 원청이 MES를 활용하는 경우 법원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추세다. 대법원은 2022년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건과 지난해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건에서 MES를 통한 원청의 업무 지시를 불법파견의 증거로 인정했다.
 
현대제철 측을 대리한 양시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대법원이 MES를 활용한 업무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뒤 대법원과 하급심에서 모두 MES를 활용한 업무는 불법파견으로 인정되는 추세"라며 "이번 사건에서도 원청이 MES를 통해 업무 지시를 한 경우 모두 불법파견이 인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2심이 MES가 아닌 다른 관리시스템을 사용한 업무에 대해서는 원청의 상당 지휘ㆍ명령이 인정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 적법한 도급으로 봤다"며 "반면 MES를 활용하면 그 자체로 원청의 직접적인 지휘ㆍ명령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직접 공정과의 관련성도 불법파견 여부를 가른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양 변호사는 "2심에서 불법파견이 부정된 업무들은 직접 공정과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업무들"이라며 "원청 본연의 업무와 관련성이 떨어질 경우 법원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보는 면이 있다"고 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불법파견을 업무별로 세분화해 판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양 변호사는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업무를 일곱 가지로 세분화해 불법파견 판단 요소를 명확하게 판단했다"며 "향후 이번 사건처럼 다수 업무에 대한 불법파견이 문제될 경우 법원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