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 불법파견 항소심 판결에 따른 금속노조 입장 발표 및 직접 고용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속노조)
 
포스코 하청 근로자들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법원은 이번에도 원청의 생산관리시스템(MES), 작업 표준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평가를 모두 불법파견의 증거로 판단했다. 노동계는 이제 원청이 하청 근로자 정규직 전환을 위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1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38-1민사부(재판장 정경근)와 제38-2민사부(재판장 박순영)는 지난달 28일 포스코 하청 근로자 A 씨 등 88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1심, "MESㆍ작업 표준서ㆍKPI 구체적 지시…불파"
 
A 씨 등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포장, 크레인 운전, 원료 투입, 원료 하역 등 여섯 개의 공정 업무를 한 하청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원청이 생산관리시스템(MES), 작업 표준서, KPI 평가를 이용해 직접ㆍ구체적으로 업무 지시를 했다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하청 근로자들의 손을 들었다. 1심은 원청이 MES를 통해 하청 근로자들에게 구체적ㆍ직접적인 지휘ㆍ명령을 했다고 봤다. 1심은 "원청은 단순히 MES에 주문받은 정보만 입력했다고 주장하지만 MES에 정보를 입력하면 MES가 작업 내용, 순서, 위치 등의 구체적 공정 내용을 자동 생성해 하청에 전달했다"며 "MES는 하청에게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 업무지시의 징표"라고 했다.
 
1심은 작업 표준서와 KPI 평가도 원청의 구체적 지휘ㆍ명령 증거라고 판단했다. 1심은 "하청이 원청의 작업 지원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KPI 평가에 따라 불이익을 받았다"며 "이는 원청이 평가 지표를 통해 구체적 지시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청은 작업 표준서에 따라 일해야 했고, 하청은 작업 표준서를 직접 작성하거나 변경할 수 없었다"며 "원청이 작업 표준서를 통해 하청의 업무 내용과 방법을 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앞서 2022년 7월 포스코 하청 근로자의 불법파견 1차 소송 상고심에서도 MES가 불법파견의 증거라도 판단했다. 지난해 1월 5차 소송 항소심에서는 이번 사건과 마찬가지로 MES, 작업 표준서, KPI 평가 모두를 불법파견의 증거로 인정했다.
 
이어 1심은 하청이 작업의 전문성이 없고 독립적인 기업 조직과 설비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 점도 불법파견의 이유로 꼽았다. 1심은 "하청 근로자들이 한 작업은 사전에 구체적으로 작성된 작업 표준서에 따라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것으로 전문성과 기술성이 없다"며 "적법한 도급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청이 하청에 공장 내 사무실, 필요 설비도 제공했다"며 "하청은 원청의 승낙 없이 독자적인 사업 방법을 개척하거나 추가적인 이윤을 획득할 기회를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독립적인 사업의 실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1심은 원하청 근로자의 작업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봤다. 1심은 "원하청 근로자들이 하는 업무가 개념적으로는 구분이 되나 하청 근로자들의 업무가 원청의 공정과 유기적으로 맞물려있어 사실상 공동 작업으로 볼 수 있다"며 "원하청 간 작업 주체의 변경도 빈번하게 일어났고, 특히 공동 수행이 가능한 업무는 원하청 근로자 간 작업의 질적 차이도 없어 원하청 근로자의 작업이 구분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심도 불파 인정…하청 불파 소송 '8전 전승'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은 "1심 판단의 근거와 추가 제출 증거를 고려하면 1심의 사실 인정과 판단이 적법하다"며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원청의 불법파견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번 소송은 포스코 하청 근로자들이 제기한 6차, 7-2차 소송의 항소심이다. 포스코 하청 근로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9차에 걸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법원은 현재까지 선고된 8개의 사건에서 모두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1차, 2차 소송은 2022년 7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돼 판결이 확정됐다. 3차, 4차 소송은 2022년 2월 항소심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된 뒤 대법원에서 사건이 계속 중이고, 5차, 7-1차 소송은 하청 근로자들이 1심에서 승소한 후 항소심이 계속되고 있다. 8차, 9차 소송은 아직 1심이 선고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 직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은 포스코가 하청 근로자 정규직 전환을 위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엄상진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법원은 2022년 대법원 판결을 비롯해 수차례의 하급심 판결을 통해 포스코가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며 "포스코는 더 이상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소송 취하 압박과 차별을 멈추고 정규직 전환을 위한 금속노조와의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홍경 금속노조 포항지부 포스코사내하청지회 비상대책위원장도 "연이은 법원 판결로 포스코의 직접 고용 의무가 확인됐다"며 "포스코는 지금이라도 포스코 하청 노동자들의 진짜 사용자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정규직 전환ㆍ차별 해소를 위한 성실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