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5-28 09:38:03 수정 : 2020-05-29 15:56:33

[탐방] 나는 왜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을까…기질ㆍ성격 검사로 ‘나’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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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호 vol.349]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입사 2년 차. 업무에는 얼마간 요령이 붙었고, 입사 초기 긴장감은 사라지고 큰 어려움 없이 근무한다. 나이는 두 살 더 먹었고 몸도 그만큼 노화했다.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 겨우 잠들면 어느새 출근 시간, 피곤을 털지 못하고 업무에 들어간다. 모든 근로자가 한 번쯤은 느껴봤음직 한 경험이다. 무기력과 만성피로가 현대인의 고질병이라 하지만, 떨쳐낼 수는 없을까. 도움을 구하고자 서울근로자건강센터를 찾았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는 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의 위탁을 받아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이 운영하는 공공기관으로, 근로자에게 다양한 건강 증진 서비스를 제공한다. 많은 서비스 중에서 직무스트레스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은 센터에서 4회 실시하고 추가 상담 및 진단이 필요하면 전문대학병원으로 연계한다. 기자는 2회로 압축 상담을 받았다.

 
"업무는 힘들지 않은데 왜 하기 싫을까요?"
 
심리상담은 처음이었다.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센터를 찾기 전 품었던 걱정이 상담실에 들어가자 눈 녹듯 사라졌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으면서 업무가 주어지면 그냥 하기 싫어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 흘러나왔다. 상담을 담당한 이정호 상담심리사는 '이전에도 그랬는지', '어떤 것과 비교 했을 때 더 하기 싫은지', '입사 초기 느낀 감정은 어땠는지' 등 뭉텅이로 던진 감정을 세세하게 쪼개어 물었다. 첫 상담은 느끼는 바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 첫 번째 상담 후 받은 TCI 기질 및 성격검사와 MMPI-2 다면적 인성검사. 수백개의 질문을 통해 타고난 기질과 현재 성격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상담에서는 스스로가 가진 기질과 성격을 바탕으로 스트레스 원인을 규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상담 후 받은 'TCI 기질 및 성격 검사'와 'MMPI-2 다면적 인성검사' 결과를 토대로 심층 상담을 진행했다. TCI는 총 140개 질문을 통해 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검사로, 사고방식, 감정양식, 행동 패턴, 대인관계 양상 등을 폭넓고 정교하게 보여 준다. MMPI-2는 총 567개 질문을 통해 개인의 성격 및 정신 병리를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다. 두 가지 심리검사를 통해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고 현재 두드러지는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자는 자극을 추구하는 자유분방한 기질에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기반으로 한 상담 결과, 업무 의욕 저하는 내ㆍ외부적으로 기질 및 성격과 상충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상황에 적응하기…계절에 맞는 옷 갈아입기
 
평소 혼자 고민할 때마다 '왜 이렇게 힘들까' 묻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기 어렵다. 'ㆀ가 화나게 만들어서', '업무 실적 압박이 심해서' 등 원인을 외부로 돌리거나, '난 항상 왜 이럴까'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기 쉽다. 직무스트레스 상담에서는 객관적인 원인을 찾고, 자신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는 묻지 않는 다양한 질문에 답하면서 '나'를 이해하고, 어떤 외부 환경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는지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힘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이정호 상담심리사는 "상담은 주변 상황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고,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적응'은 '순응'과 다르다. 스트레스를 완화할 방법을 찾아 자발적인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이정호 상담심리사는 이를 계절에 맞는 옷 입기로 표현했다.

그는 "겨울에 따뜻한 외투를 입으면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여름에 그 외투를 입으면 어떻게 될까. 땀나고 힘들기만 하다. 여름에는 여름에 맞는 옷을 입고, 겨울에는 겨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갈등과 문제를 많이 겪는 사람을 보면 상황에 맞춰 옷 갈아입는 것이 서툴다. 상담을 통해 상황에 맞게 잘 적응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고, 또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센터를 방문했던 한 상담자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 서툴렀다. 화가 나도 표현하지 못해 속으로 삭이다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이다. 센터는 심리상담과 함께 감정을 표출하는 연습을 병행했다. 신문지나 종이를 찢어서 날려보기도 하고, 화산이 폭발하는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씩 연습하면서 '정서 환기'를 도왔다. 불편한 기분을 꺼내어 한 번 씻어내는 것이다. 4번의 상담을 마치고 상담자는 조금씩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심리상담 '만능키' 아냐
 
현재 안전보건공단이 운영하는 전국 23개 근로자건강센터, 근로복지공단의 EAP 서비스를 비롯해 각 지자체 보건소에서 다양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도 4개 권역에 심리지원센터를 운영하고, 감정노동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에서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힘들 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심리상담이 가까워졌다.

다만 무분별한 상담 서비스 확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족한 예산으로 사업을 확대하다 보면 상담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호 상담심리사는 "예산이 부족하면 적합한 자격자가 아닌 사람이 상담을 진행하게 되는 등 상담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질 낮은 상담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며 "심리상담이 널리 알려지고 확대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적절한 예산을 확보해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상담자들이 제대로 상담받고, 심리상담이 왜 필요한지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리상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괴롭고 우울하다는 상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은 몹시 피곤하거나, 체력이 떨어졌거나, 생활이 불안정해서 느끼는 피로감도 크다. 운동을 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하면 살아가는 모습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며 "많은 문제가 꼭 심리상담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심리상담은 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는 근로자의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원하기 위해 직무스트레스 상담 외에 ▲전문의 건강상담 ▲뇌ㆍ심혈관질환 예방상담 ▲생활습관개선 상담 ▲근골격계질환예방상담 ▲작업(근무)환경상담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규직 근로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일용직, 아르바이트, 외국인 노동자 등 '일하는 사람'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임고은 기자 goi@elabor.co.kr
임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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