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9-15 18:21:47 수정 : 2020-09-16 11:20:33

[분석] 법원, “불법파견이라도 ‘동종유사업무 근로자’ 없다면 임금차액 청구 안돼”

  • 장바구니에 담기
  • 프린트
  • 작은글씨
  • 큰글씨
[2020년 10월호 vol.353]



 

[월간노동법률] 곽용희 기자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가 외주 사업체를 통해 요금수납원 등을 고용한 것은 불법파견이므로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불법파견이 인정돼 직접 고용해야 하더라도, 원청 소속 근로자 중 파견 근로자와 동종유사 업무를 하는 근로자가 없다면 임금 차액(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단도 함께 나와 화제다.
 
창원지방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장우영)는 지난 9월 10일, 민자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이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고용의사표시 청구의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원고 일부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피고인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는 민간투자법에 따라 대구-대동간 고속도로 시설 사업을 위해 현대산업개발, 금호산업, 주식회사 대우, 한진중공업, 대림산업 등 9개 민간기업의 출자해 설립된 법인이며 사업기간도 한정돼 있다.
 
원고 근로자들은 피고인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이하 '회사')측과 통행료 수납업무 용역계약을 체결한 외주사업체 소속 근로자다. 이들은 피고 회사 영업소의 통행료 수납, 통행권 발행, 하이패스, 미납차량 적발 업무 등을 담당해 왔으며, 외주사업체가 변경돼도 변경된 업체와 새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계속 근무해 왔다. 이들은 피고 회사 로고가 들어간 명찰, 과적단속 안전 조끼 등을 착용했으며, 영업소에는 회사 명의 업무강령이나 사훈 등이 비치돼 있었다. 또 회사 매뉴얼이나 규정, 업무 지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법원은 "피고 회사와 외주업체 사이 용역계약은 파견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근로자파견계약"이라고 판단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 근거로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지휘-명령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영업소 근무자들과 (정규직) 직원들이 비록 장소적으로는 분리됐지만 유기적인 협력으로 통행료 수납업무, 체납차량 단속업무 등을 수행했고, 공동으로 교통안전캠페인 등 각종 업무를 수행하거나 함께 모의훈련과 직무교육을 받았다"며 "영업소 근무자들과 (정규직) 직원들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서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해 피고 회사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는 영업소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소장이나 사무직 직원도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도 문제돼 눈길을 끌었다. 회사 측은 "영업소 소장들은 현장대리인의 위임을 받아 직책을 대신하는 감독업무를 수행할 뿐 피고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장과 사무직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영업소 운영을 위한 업무에 당연히 포함"된다며 "외주업체가 소장과 사무직원을 고용한 것은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 피고 회사가 직책별 과업인원을 특정했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수납원의 근로관계를 파견관계로 보는 이상, 함께 외주화 된 소장과 사무직원 업무를 분리해서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며 "수납원들뿐만 아니라 소장, 대리, 파트장인 원고들에 대해서도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라고 판단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 없다면 임금 차액 청구 할 수 없다"


한편 법원은 직접 고용 의무는 인정했으면서도 임금 차액 청구권은 부정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 파견법은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 판단을 받아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게 되는 경우, 그 근로자의 처우에 대해 ①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파견근로자와 동종-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조건을 적용하고, ②동종-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으면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 수준보다 저하돼서는 안 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에 원고들은 자신들이 정규직 직원 중 비교적 단순한 행정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5급 직원과 동종-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5급이 최하위 직급이다.
 
한편 과거 몇몇 하급심은 유사한 사건에서 동종유사업무를 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여도 원청근로자 중 '업무가치가 유사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수준에 맞춰줘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원고 근로자들은 한국도로공사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구지법 김천지원 사건을 근거로 들었다. 김천지원 사건에서는 법원이 수납원과 동종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음에도 회사 정규직 '조무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점에서 (5급과) 같거나 유사한지에 대해서 아무런 주장-입증을 하지 않고 있다"며 "영업소 근무자들과 회사의 5급 직원은 학력, 경력 등 채용조건, 채용절차, 업무내용 및 범위, 권한과 책임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외주사업 근로자에게는 나이, 중졸 이상의 학력 외에 다른 특별한 자격은 요하지 않았고 면접심사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4급, 5급 직원은 고졸 학력소지자일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시험이나 전형을 거쳐 다양한 제출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 "일부 부서 직원의 경우 필수적 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보인다"며 "(정규직) 직원들이 영업소 근무자들을 지도-감독 할 지위에 있음을 감안하면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숙련도를 요한다"고 설명했다.
 
회사 직원들 중 동종, 유사 업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는 근로자가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법원은 "피고 회사는 파견법에 따라 수납원들이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지지 않는 범위에서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을 뿐"이라며 임금 차액에 대한 손해배상 채권 부분은 기각했다.

또 "김천지원 사건은 수납원들과 조무원들이 '동등한 가치의 근로'를 제공한다는 점에 대한 주장이나 입증이 있었다"며 이 사건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원고 근로자들은 "동종, 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더라도 회사 취업규칙에서 정한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이 원고들에게 지급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탈법행위를 용인하는 셈"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파견법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하는 근로자가 없는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까지 파견근로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주려는 것이라거나 사용사업주에게 제재를 하려는 취지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일축했다.
 
사용자 측을 대리한 김용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이와 동일하게 판단한 대법원 판례는 없어서 의미가 크다"며 "김천지원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건의 차이점에 대해 김용문 변호사는 "민자고속도로 주식회사는 설립시부터 애초에 국토교통부와 협약을 맺으면서 회사는 최소한의 관리 인원만 두고 나머지 사업은 도급으로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설립된 특수목적 법인이고 사업 기간도 한정돼 있다"며 "도로공사의 경우 원래 자신들이 하던 일을 정책에 따라 외주화한 것이지만, 이 사건 회사는 애당초 자신들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종-유사 업무를 찾을 근거 자체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사건 회사와 유사한 취지로 설립된 주식회사는 적지 않은 상황이며, 전국에서 비슷한 분쟁이 제기됐거나 제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근로자들이 소송을 할 실익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특수목적 법인은 사업기간이 한정돼 있어서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하는 근로자들의 주된 목적이 고용안정성이 아닌 경우가 많다"며 "임금 차액 청구가 기각될 경우 소송을 할 실익이 크지 않아 노동조합 입장에서도 황당한 상황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곽용희 기자 kyh@elabor.co.kr
곽용희  기자
저자이미지

목록보기 버튼

이전글 
법원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사용자...직영기사 대체투입도 위법” 파장주목
다음글 
이슈 List 더보기 >
  • 1법원, “불법파견이라도 ‘동종유사업무 근로자’ 없다면 임금차액 청구 안돼”
  • 2법원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사용자...직영기사 대체투입도 위법” 파장주목
  • 3서울고속도로 용역업체, 부당노동행위 의혹...사측 "사실무근"
  • 4대법, "원청 사업장서 파업한 하청근로자, 업무방해 아냐" 최초 판결
  • 5파업서 CJ대한통운 대체투입 차량 막아선 택배연대노조 조합원, “일부 유죄”
  • 6산재보험 등 대행기관 5년간 경고 3212건...손놓은 근로복지공단
  • 7원격근무로 본 현재와 미래
  • 8다시 고개 드는 포괄임금 폐지 주장...정부, 3년 넘게 ‘무소식’
  • 9이해강 한국애보트지회장 “노조 없으면 술자리 뒷담화에 그쳐”
  • 10대법원 “공립학교 영어회화 강사도 무기계약직 전환"...정규직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