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1-05-13 20:57:58 수정 : 2021-06-01 14:01:54

[분석] [단독]스페인, “배달라이더는 근로자…플랫폼 기업, 알고리즘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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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호 vol.361]



[월간노동법률] 곽용희 기자

 
스페인 내각이 지난 22일 글로보(Glovo), 딜리버루(Deliveroo) 등 음식배달 플랫폼 기업의 배달 라이더를 자영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추정하는 새로운 긴급명령(왕실 법령)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식 명칭은 '디지털 플랫폼 유통에 종사하는 개인의 고용 상태에 관한 법률'). 이 법안은 '알고리즘 공개' 등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욜란다 디아스 제3부총리(노동부 장관)는 화요일 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매우 만족스러운 날"이라며 "스페인은 이 문제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고, 유럽과 전세계가 모두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법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승인된 이른바 '라이더법'은 지난 3월 노동계와 경영계가 만나 6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음식배달 라이더의 노동권에 관해 도출해 낸 결과물이다. 이 협상은 지난해 9월 스페인 대법원이 "라이더들은 (자영업자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 글로보와 근로관계에 있다"며 처음으로 라이더의 손을 들어준 직후 시작됐다. 판결 이후에도 논란이 일부 계속됐지만 이번 라이더 법 승인으로 종식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에서도 최근 몇 년 동안 플랫폼 근로자들이 자신들을 임금 근로자로 인정해주고 병가나 유급 휴가와 같은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정부의 적극적 근로감독을 통해 그동안 1만6,794명의 라이더들이 위장도급 형태를 벗고 근로자로 인정 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더법은 5월 12일에 관보를 통해 공포되면서 바로 시행됐지만 8월 12일까지 3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갖게 된다. 그동안 플랫폼 기업은 라이더와의 근로관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승인된 법은 음식배달 라이더들에게만 적용되며, 우버 등 유사 택시나 그밖의 다른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라이더법, "플랫폼 기업, 알고리즘 작동방식도 투명하게 공개하라"
 
이 법은 또한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조건, 고용과 해고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AI)에 관한 정보를 근로자대표에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한다. 스페인 정부는 '노동관계에서 AI와 알고리즘의 좋은 활용 방법'을 연구할 전문위원회 신설도 발표했다.
 
스페인 경영계는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글로보, 딜리어루, 스튜어트(Stuart), 우버이츠(Uber Eats) 등 음식 배달 플랫폼 기업을 대표하는 협회 APA는 "스페인이 스타트업 국가를 자처하는 것이 무색하게도 (라이더법은) 유럽 최초로 IT 기업에게 알고리즘을 공개할 의무를 부여한 법률을 제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알고리즘의 공개는 플랫폼 기업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영주 노동문제연구소 해방(解放) 연구위원은 "지난 몇 년간 플랫폼 노동의 근로자성을 두고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일단락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플랫폼 기업이 AI 알고리즘을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라이더법에도 이런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주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플랫폼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알고리즘의 투명성이 막판까지 쟁점이 됐으나 플랫폼 기업 측의 반대로 결국 최종 협약에서는 알고리즘 대신 '플랫폼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업무 배분에 관한 서비스 정책, 기술적 요소 등'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알고리즘을 두고 세계적으로 플랫폼 노사 간에 대립이 첨예하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법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욜란다 디아스 스페인 제3부총리(노동부 장관): 유튜브 화면 캡쳐


 
노사 각계, 서로 다른 반응…플랫폼 기업 "스페인 공유경제는 끝났다"
 
새 법에 대해 스페인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응은 다양하다. '배달노동자연합운동' 같은 일부 라이더 단체는 플랫폼 기업이 급여를 줄이기 위해 라이더들을 해고할 것이므로 라이더법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의회 밖에 모여 라이더 법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들기도 했다.
 
이들은 니콜라스 슈미트 유럽 집행위원회(EC) 고용 및 사회권 담당 위원에게 서한을 보내 "(스페인 정부에) 개입해서 법 시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위원회에 그럴 권한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협상에 참여했던 UGT 노조 사무총장은 "복잡했던 상황이 이 법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시행 시기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법이 승인됐는데도 플랫폼 기업들에게 3개월이라는 긴 유예기간을 부여했다"며 "플랫폼 기업은 이 유예기간 동안 자신들이 고용한 라이더의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역시 교섭에 참여했던 다른 관계자도 "이 법이 라이더와 플랫폼 기업 사이의 근로관계를 강화하고 알고리즘 활용 등 새로운 인력관리 방식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면서도 "더 나아갔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APA는 라이더 법에 큰 우려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APA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법이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에서 7억 유로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발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 협회는 또 라이더법이 의회 논의가 아니라 긴급명령 형식으로 통과된 데 대해 "식당이나 플랫폼 기업, 심지어 라이더들 스스로의 고민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버이츠도 이 법이 스페인의 공유 경제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우버이츠 대변인은 "(라이더법은) 유연한 일자리를 원해 음식 배달 앱을 사용하는 수천 명의 라이더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것"이라며 "그들은 근로자로 분류되기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배달 플랫폼 기업에 갈수록 의존하고 있는 스페인 식당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버이츠는 업계 조사에 따를 경우 스페인의 라이더 3만 명 중 75% 이상이 소득원을 잃고 식당들도 2억 5천만 유로의 수익을 더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음식 배달 플랫폼 기업이 라이더 법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저스트 이트(Just Eat)의 모회사인 저스트 이트 테이크어웨이(Take Away)는 새로운 법이 "라이더에게 필수적인 법적 보호를 부여했다"며 "플랫폼 기업에게는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질 좋은 일자리가 마련되도록 촉진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EU에는 어떤 의미일까…"영국식이냐 스페인식이냐"
 
이영주 연구위원은 "최근 유럽 각국의 최고법원은 음식배달 라이더나 유사택시(승차공유) 운전기사와 같은 대표적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영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라는 판결을 잇따라 선고하고 있는데, 스페인 라이더법은 그러한 추세를 입법으로 반영한 첫 사례"라고 이번 입법의 의미를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 법을 유럽연합(EU)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유럽 집행위원회(EC)의 플랫폼 노동 근로조건에 대한 구상이 올해 말로 다가옴에 따라, 산업, 노조, 정책 입안자들은 스페인 사례를 눈여겨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은 EU가이 스페인의 조치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우버는 근로자 추정(스페인) 대신 제3의 지위(영국)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월 영국 대법원은 우버 운전기사가 '노무제공자(Worker)'라고 판결했고, 우버는 이에 따라 운전기사들에게 휴가 기간과 연금 권리를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노무제공자란 영국 특유의 고용상 지위로서, 자영업자와 달리 노동법상의 일부 권리를 누릴 수 있지만 근로자(Employee)처럼 모든 권리를 보장 받지는 못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유럽 집행위원회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 경쟁 및 기술 담당 위원은 영국처럼 제3의 지위를 창설하는 절충적 접근 방식에는 다소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용희 기자 kyh@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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