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노동법률] 이수정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1. 들어가는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의 회귀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4차 대유행이 본격화 되면서 이후 국면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재난이었으나, 그 이전부터 노동방식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유연해지고 있었다. 디지털 전환, 글로벌화 등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반된 근무장소, 근무시간의 경계 해체와 더불어 근로자의 니즈 변화도 근무장소 및 근로시간 등 근무방식의 변화를 촉진하는 요소 중 하나다. 

잡코리아가 지난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직장인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1.5%가 올해 재택근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82.4%는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74%는 상시형보다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방식의 재택근무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재택근무가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일상적인 근무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이 예상됨에 따라 기업과 근로자 간 근무방식의 유연성에 대한 이익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가 문제되고 있다. 근로자 개인에게 근무장소와 근로시간 결정에 관한 자유를 얼마나 확대할 것인지, 직무 및 세대에 따라 근로자들 간 서로 다른 기대와 수요를 어떻게 인사관리에 반영할 것인지가 특히 문제된다. 

최근 독일에서는 재택근무의 요건과 제기되는 문제점의 해소를 위해 지난 2020년 10월 재택근무법률안 1차 초안이 제출됐고, 2021년 1월에는 1차 초안을 보완한 2차 초안이 제출됐다. 디지털 전환과 직접 관련하여 재택근무에 대한 법적 규율을 시도한 사례로는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확산되는 재택근무에 관련된 문제점과 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논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바, 본고는 그 일환으로 독일 재택근무법률안의 주요 내용을 검토하고 그 시사점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2. 독일 재택근무법률안의 배경과 논의 경과

독일의 경우 디지털전환의 확산으로 모바일워크, 재택근무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독일 고용연구소(IAB)의 패널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제공한 기업의 비율이 2014년 32%에서 2016년에는 37%로 증가했고, 재택근무를 경험한 근로자의 비율도 2013년 13%에서 2019년에는 30%로 급증했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 상반기에는 근로자의 50%가 하이브리드 방식(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혼합)의 재택근무 경험이 있으며, 그중 20%는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활용 실태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나 독일 경제조사연구소(Ifo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독일 전체 근로자의 56%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재택근무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4월 26일, 독일에서는 연방노동부장관인 후베르투스 하일(Hubertus Heil, SPD)의 주도 하에 처음으로 재택근무 법률안이 마련됐고, 내부논의를 거쳐 같은 해 10월 발의됐다. 재택근무법률안의 정식 명칭은 "모바일 워크법"(Mobile Work Act)이다. 모바일 워크는 재택근무(Home Office)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스스로 선택한 장소(예를 들어 공동사무실, 스마트워크센터 등)에서 수행하는 근무방식도 포함한다. 그렇지만 모바일 워크의 대부분은 재택근무방식으로 수행하므로 여기서는 '재택근무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재택근무법 1차 초안의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규정은 최소 6개월 이상 근속한 근로자에게 1년에 최소 24일 재택근무 또는 모바일근무를 청구할 수 있는 재택근무 청구권을 인정한 규정이었다. 근로자의 재택근무 청구에 대해 사용자는 경영상의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만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종업원평의회(Works Councils)는 모바일워크와 관련된 사항에 관한 공동결정권(Co-Determination)을 가지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 외에도 재택근무자의 근무시간은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돼야 한다는 규정과, 산재보험 적용과 관련된 미비점을 개선하거나 산재보험 인정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규정도 주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일연방노동부의 1차 초안은 연정파트너인 기독민주당(CDU)의 비토(Veto)와 기업들의 강력한 반발로 관철되지 못했다. 2018년 체결된 연정정책합의서에 따르면 "양질의 디지털노동"이라는 제목으로 모바일 워크를 촉진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그 법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있기는 하나, 그것이 근로자에게 재택근무청구권을 부여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것이 연방정부 내부의 비토 사유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지난해 10월 4일 연방총리실은 1차 초안에 대한 논의를 일단 중단시켰다. 이후 다시 정부차원에서 논의를 재개해서 같은해 11월 30일 2차 초안이 마련됐고, 올해 1월 14일 2차 초안 수정안이 제출됐다. 


3. 독일 재택근무법률안의 주요 내용

독일 재택근무법 2차 초안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을 검토한다. 재택근무법률안은 독립된 단행법률이 아니라 관련 법령의 개정안을 포괄하는 법률안을 의미한다. 이 법률안의 주요 개정대상 법률은 우리 근로기준법과 비슷한 독일 영업령(Gewerbeordnung) 제111조, 제112조, 제147조와, 사회법전 제7편(산재보험) 제8조, 그리고 종업원평의회의 권한에 관한 사업장조직법(Betriebsverfassungsgesetz) 제87조이다. 이 중에서 사업장조직법 개정안은 올해 5월 연방의회 의결을 거쳐 6.14일에 공포됐다. 

가. 영업령 제111조의 개정안 내용: 재택근무 신청 및 협의의무

1차 초안에서는 1년간 최대 24일까지 근로자에게 재택근무(모바일 워크)청구권을 부여했으나 기업과 정부 내부의 격렬한 반대로 2차 초안에서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재택근무(모바일 워크) 개시를 목표로 근로자의 통지의무와 사용자의 협의 및 설명의무를 규정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여기서 모바일 워크는 '작업장 밖에서, 근로자가 선택한 장소나 노사가 합의한 장소 한 곳 또는 여러 곳에서 IT 기술을 이용하여 노무를 제공하는 것'으로 '규칙적이고 정기적인 모바일 워크'를 대상으로 한다(영업령 제111조 개정안). 모바일 워크의 핵심요소는 IT 기술의 사용이다. 근로자가 규칙적으로 재택근무(모바일 워크, 이하 재택근무라 한다)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사용자에게 재택근무의 개시 시기, 기간, 범위, 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의 배분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늦어도 개시 3개월 전에 통지해야 한다(개정안 제111조 제1항 제1문). 즉,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사전에 구체적 사항을 기재해 서면으로 신청하라는 취지의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로자가 재택근무 신청을 통지하면 사용자는 합의에 도달할 목적으로 협의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개정안 제111조 제2항). 

이처럼 독일은 개정안에서 재택근무의 필요성 및 구체적 근무방식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의  대화(협의)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해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그 협의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의 통지 이후 늦어도 2개월 내에 거부 결정 및 그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개정안 제111조 제3항 제1항)

그런데 사용자가 사실과 다른 이유로, 자의적으로, 차별적으로 그리고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조치의 일환으로 근로자의 재택근무 신청을 거부해서는 아니되며, 사용자가 설명의무 및 협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자가 통지한 재택근무를 최대 6개월까지 허용한 것으로 간주한다(개정안 제111조 제3항 제2문 이하). 사용자가 정당하게 근로자의 재택근무 통지를 거부할 경우 근로자는 4개월이 지난 후에 다시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개정안 제111조 제4항).

나. 영업령 제112조 개정안 내용: 재택근무자에 대한 근로시간의 증명

재택근무자에 대한 근로시간의 증명에 관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사용자는 재택근무자의 1일 근로시간의 시기, 종기, 시간총수를 기록 관리하고 그 자료를 2년간 보존해야 한다(개정안 제112조 제2항)고 규정했다. 유럽법원의 2019.5.14. Stechuhr 사건 판결(C 55/18)에서는 EU 회원국의 모든 사용자는 근로자가 제공하는 1일의 근로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접근가능한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판결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종전 독일 근로시간법은 1일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시간을 기록할 의무만 규정했고, 우리 근로기준법 제48조(임금대장) 및 시행령 제27조에서는 사용자의 포괄적 기록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근로시간 증명과 관련해 일차적 기록 의무의 주체는 근로자이다. 사용자는 이를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근로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잘못 기재하거나 누락하는 경우 사용자의 기록관리 의무가 면책된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요구하면 기록된 근로시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부본을 교부해야 한다(개정안 제112조 제3항). 

다. 영업령 제147조 개정안 내용: 안전보건규정의 위반

영업령 제147조 개정안에 근로시간 기록관리를 안전보건 조치 중 하나로 추가해 고의 또는 과실로 개정안 제112조의 기록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누락하거나 정확하게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지연하거나 보존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3만 유로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라. 사회법전 제7편(산재보험) 제8조 개정안 내용: 업무상 재해

독일 산재보험도 우리 산재보험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업무수행과 관련돼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서 보호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출근과 퇴근경로에서 발생한 사고도 출퇴근재해로서 보호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재택근무 시에는 업무수행 영역과 사적생활 영역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를 고려해 재택근무법안은 독일 산재보험법에 관련 개정안을 포함시켰다. 즉, 재택근무에 대해서도 일반 사업장에서의 업무수행과 동일한 기준에 따라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새로 추가했다(사회법전 제7편 개정안 제8조 제1항 제3문). 

또한 재택근무 시에는 재택근무가 수행되는 자택에서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간의 직접적 경로에 대해서도 출퇴근재해가 인정되는 경로로 규정하고 있다.

마. 이미 개정된 법률

재택근무 법률안과 관련해 현재 유일하게 입법된 법률은 사업장 조직법이다. 사업장 조직법 제87조 제1항은 근로조건이나 복무규율에 관해서 사용자와 종업원대표의 공동결정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통상적인 근로자의 복무질서에 관한 사항,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편성, 임금지급일 및 지급방법, 연차휴가의 실시에 관한 사항, 성과급이나 상여금에 관한 사항 등 13개의 사항이 그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이 규정에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제공되는 모바일 워크의 내용에 관한 사항을 정한 제14호가 신설됐다. 

그렇지만 사용자와 종업원대표의 공동결정 대상은 "모바일 워크의 내용"에 관한 것일 뿐 모바일 워크의 도입에 관한 결정은 공동결정의 대상이 아니다. 해당 법률의 입법이유서에도 이 점은 명시적으로 표현돼 있다. 

그에 따르면 공동결정의 대상은 모바일 워크의 수행 방법에 관한 것이며, 그 도입 여부는 사용자의 결정권한에 속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BT-Drs. 19/28899, 23). 위의 입법이유에 따르면 공동결정의 대상은 모바일 워크(재택근무)의 시간적 범위, 1일 근로시간의 개시시각과 종료시각, 모바일 워크가 수행되는 장소에 관한 규율, 모바일 워크 중 사업장 출근의무에 관한 사항, 종업원 자신의 디바이스 사용에 관한 사항, 사용자의 비용부담의 범위 등이 열거되고 있다.


4. 시사점

우리나라는 물론 독일에서도 근로자의 재택근무 청구권 또는 모바일워크 청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염병 예방관리 등 방역상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한시적으로 재택근무를 방역조치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지만 이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을 방지하기 위한 위기대응 조치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재택근무에 관한 규율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디지털화로 이미 수년 전부터 근무장소에 대한 제한이나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재택근무 방식은 보편적인 근무형태의 하나로 정착되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면 그 활용 비중은 과거보다 훨씬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논의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근로자에게 재택근무청구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할 것인지 아니면 사용자에게 협의의무 및 근로자의 신청을 거부할 경우 그 근거 제시 의무와 같은 방식으로 규율할 것인지는 입법부의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다. 독일 정부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근로자에게 재택근무청구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데 경영계의 반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재택근무법률안이 실제로 입법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재택근무의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규율하든 간에 몇 가지 사항은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첫째, 재택근무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의 기재사항(근로기준법 제93조) 또는 노사협의 대상(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제20조)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재택근무를 위한 근무 조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근로시간의 산정, 안전보건에 관한 사항(사용자와 근로자가 준수해야 할 안전상의 조치), 회사정보에 대한 보안조치 및 사용자의 비용부담 문제 등에 대한 규율은 재택근무가 사실상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사전에 구체적으로 규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의 관련 법률안은 그 입법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